BLOG ARTICLE 낙산공원 | 2 ARTICLE FOUND

  1. 2009.10.03 20091003 - 연휴 첫날 낙산공원 2
  2. 2009.02.16 20090215 - 낙산공원 8

 '백야행'의 여자주인공은 매일 술에 취해 있고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을 매춘으로 내모는 엄마를 가스로 살해하면서 이후의 인생에서 어둠속을 걷기 시작한다.

 어제 낙산공원에 갔다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엄마와 아들을 봤다. 
 
 엄마와 아들이 공원 매점 앞에 놓인 파라솔 아래서 컵라면을 먹는다. 아들은 짜장 컵라면을 먹고 엄마는 왕뚜껑을 먹는다. 아들은 라면만 먹는데, 엄마는 김밥 두 줄을 라면 국물에 찍어서 한이라도 삼키듯이 꾸역꾸역 삼킨다. 게다가 엄마는 캔 맥주를 마셔가며 먹는다. 테이블 위에는 캔 맥주가 두 개 놓여있다.
 

 짜파게티 면을 삼키던 아들의 무덤덤한 듯 불안한 표정이, 초등학교 4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들에게 무어라고 중얼거리면서 김밥을 라면국물에 담그고, 맥주를 홀짝거리던 엄마의 무심한 듯 불안한 표정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다. 

 보통 명절연휴는 가족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는 즐거운 시기다. 

 추석 연휴 첫 날 그런 모습을 봤기 때문에, 때마침 '백야행'을 드라마로 보고 있기 때문에 어제 봤던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이겠지.

 어제 본 엄마와 아들의 그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었던 것이라면 좋겠다.

 돌아가신 큰 이모 아들내미(내 사촌 동생)가 술에 취한 채 해가 뜨는 오산천을 바라보다가 울면서 막내이모에게 전화해서는 엄마가 없다는 것이 이런 것인줄 몰랐다면서 너무 힘들다고 했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오랜만에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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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 2 학년을 안성에서 지냈다. 예술대 A, B동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와 한 학기 30만원 짜리 자취방, 그곳에서의 추억들이 있었기에 무척 행복했다.
대학 3, 4 학년은 대학로로 다녔다. 안성에 계속 있고 싶었던 아쉬움을 학교 바로 뒤에 있던 낙산공원이 달래주었다. 사실, 나를 즐겁게 해준 것은 낙산공원이 아니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길들을 헤치며 낙산공원 입구까지 오르던 순간들과 성벽에 올랐을 때, 보이는 사진속의 풍경들이었다. 술 사러 가서 종이컵은 없냐고 물으면 유리잔을 내주시면서 다 먹고 돌려달라고 하던 할머니가 운영하던 시골에나 있을법한 작은 구멍가게가 있고, 화려한 대학로를 반대편에 두고 마을버스 한 노선만 오고가는 언덕 위의 동네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낙산공원에 즐겨 올랐다.

오늘은 처음으로 대학로 쪽이 아니라 한성대 쪽에서 낙산공원에 올랐다. 정확한 사업명칭은 모르지만 아무튼 낙산공원을 좀 더 가꾸기 위한 사업 때문에 할머니의 구멍가게는 사라졌고 그 자리는 깔끔한 모습으로 정리되고 있었다. 사진속의 저 집은 아슬아슬하게 지역 개발의 구획에서 벗어났다. 나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저 집의 주인 아저씨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또 구멍가게 할머니는 어디로 가셨을지도 궁금하다.

나는 재개발 및 뉴타운과 관련해서 지금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의 외관과 내부를 좀더 예쁘고 실용적으로 고쳐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쪽이다.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들이 공원 바로 옆에 들어서지 않게 되서 정말 다행이다.

나는 내가 알던 풍경들이 사라지는 게 싫다. 그 싫음이 단순히 점점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에 생기는 고집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김훈이 '바다의 기별'에 실린 산문에 자기가 지금 사는 곳을 고향으로 만들지 못하면 어디에도 고향은 없다고 썼는데....
오늘 그 구절이 많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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