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고래의 도약 | 1 ARTICLE FOUND

  1. 2009.12.14 20091214 - 상민씨 집 방문, 영화 '원쓰', 루시드 폴 '고등어' 4

지난 토요일에 파주에 다녀왔다. 합정에서 버스 타니까 일산 잠깐 지나서 금방 파주였다.
버스에 내려서 상민씨한테 전화를 했다. 걸어오라는 방향으로 걷다가 아파트 2층 베란다에서 손을 흔드는 상민씨를 봤다.
그 모습에서 내 방문에 대한 반가움과 함께 굉장한 여유가 느껴졌다.

출판인의 집 답게 책이 많았고 손수 만든 책장이 있었다. 얼만전 만나서 새 책장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기타스탠드를 하나 만들면 좋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었는데, 나비목까지 직접 새겨 넣은 책장을 보니 기타 스탠드를 꼭 만들고 싶어졌다. 아마도 이런것이 좋은 영향일 것이다. 나도 그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좋을텐데...

상민씨가 저녁을 해줬다. 요리 전문가(?)답게 혼자 사는 남자의 집인데도 부엌이 정갈하고 냉장고 안과 싱크대가 쓰기 좋게 잘 정리된 상태였다. 상민씨는 이미 끓여 놓은 미역국이 있었는데도 미역국과 된장국 중에 내가 된장국을 선택하자 된장국을 끓여줬다. - 물론 내가 '된장국'이라고 대답할 때, 나는 미역국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 된장국 끓일 때, 멸치를 정말 오래 끓이는 것이 맛의 비결이라는 것을 배웠다. 이런, 또 좋은 영향을 받아버렸네. 상민씨는 설탕 대신 손수 만든 사과잼을 넣은 제육볶음도 내게 대접했다. 우리는 술을 마셨다.

저녁을 다 먹고 술을 많이 마신 나는 잠깐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마루에 불이 꺼져 있고 상민씨랑 같이 누워 있었다. 바닥이 따뜻했다. 오랜 시간 정신을 잃었던 것은 아니었을 텐데 머릿속이 맑았다. 정확하게는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제육볶음에 들어간 사과잼 때문이거나 그가 정성껏 끓여준 된장국 때문일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미역국을 함께 먹지 못 하는게 미안했지만 좀 더 누워 있다가 집으로 왔다.

상민씨는 흙 속에 사는 생명체들에 대한 어린이 그림책의 원고를 본인의 상식선에서 쓸 수 있는 훌륭한 청년이다. 나는 상민씨 덕분에 땅강아지의 실체를 서른 두 살의 막바지에 알게 됐다.

해이리는 돈 있는 애들 노는 놀이터이고 여자들 보러 홍대에서 있는 모임에 나가겠다고 하는 그에게 얼른 애인이 생겼으면 좋겠다.


어젯밤에는 영화 '원쓰'를 봤다. falling slowly를 연주하고 싶어졌다.

노래랑은 별개로 아이 아빠를 고향에 두고 아일랜드로 이민 온 체코 여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혹시 그 집에서 쫓겨난는 상황이 왔을 때, 피아노를 가지고 쫓겨날 수 있을까? 영화 마지막에 애 아빠도 아일랜드로 왔던데 돈이 궁하면 피아노를 가장 먼저 팔아버릴까? 같은 생각을 했다.

'가난'과 '빈곤'은 같은 말인데, '빈곤'의 반대말은 '풍요'정도로 하면 될 것 같아도 '가난'의 반대말은 암만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영어로 반대말 놀이를 해 보면 the poor <-> the rich, poverty <-> property일까? property는 '재산'을 뜻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재산이 없으니까 그대로 반대말이 된다고 생각해 본다.

루시드 폴의 '고등어'란 노래 가사에서는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난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라고 한다. 이 노래에서 '고등어'의 반대말은 '서울의 꽃등심'이다. 정말 슬픈 곡이다. 꽃 같은 사람들은 등심을 먹고 등이 푸르도록 일하는 사람들은 고등어를 먹는다고 하면 생각이 지나친 거다. 루시드 폴에게는 '고등어'가 가난이다. 라고 해도 너무 생각이 지나친 것 같다. 어제 늦게 자서 그런가 정신이 횡설수설한다.

어제 루시드 폴 새 앨범 들으면서 깊은 낮잠을 잤는데, 그것이 내가 늦게 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관련이 있다.



짤방은 타무라 시게루의 '고래의 도약'에서...(원제는 glassy ocean)
바다가 얼어버린 미래에 고래가 얼음 바다를 뚫고 도약한다는 아름다운 스토리였다. 자세한 스토리는 기억이 잘 안난다.
저 고래자리에 고등어가 있어도 흥미로운 것 같아서 짤방으로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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