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7 - 남매의 여름밤
남매의 여름밤
아빠는 이혼을 했고, 나와 동생을 버린 엄마 얼굴은 보고 싶지 않다. 아빠는 여름방학 동안 할아버지 집에 동생과 함께 있자고 한다. 내키지 않지만 그 이유가 돈 때문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다. 할아버지가 싫지는 않지만 서로 할 말이 있는 사이는 아니다. 초등학생인 동생은 어딘지 아직 철이 없는듯하고 아빠는 돈이 없다. 고모부와 크게 다툰 고모도 할아버지 집에서 같이 살게 됐다. 좋아하는 남학생은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다. 중학생(고등학생?) 옥주의 상황이다.
아이와 청소년의 경계에 있는 주인공의 심리를 몇 가지 상황들을 통해 잘 표현했다. 동생과 같이 자고 싶진 않지만 같이 잘 수도 있다. 짝퉁 신발 거래에서 상대방에게 추궁을 당하자 그 자리에서 달아난다.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줬던 신발을 빼앗아 도망친다.
옥주는 할아버지 집에 잠깐 살기 위해서나 할아버지 집을 팔기 위해서는 할아버지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을 아는 나이다. 그런데 아빠와 고모는 일단 저질러놓고 허락받거나 허락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어른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에서는 인물들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둘러앉아서 콩국수, 잡채, 생일케잌, 포도같은 걸 먹는다.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는 엄마까지 함께 국밥을 먹는다. 단, 그것만 현실이 아니고 엄마는 엄마인데도 가족은 아니다. 가족의 증명은 뭘 같이 먹는 것이다.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인물 한 명, 한 명이 국밥을 먹는 초상화 씬이 좋았다.
감독의 첫 작품인 것 같은데 여러 감독들이 겹친다. 아빠의 작은 봉고차를 정면에서 찍은 장면들과 사람들이 프레임 안에 갖혀서 뭔가를 먹는 컷이 좋다.(장률 영화에서 많이 보이는)
아빠랑 고모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예상했지만 옥주는 예상하지 못했고, 장례식장에 엄마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을 것이다. 결국 엄마는 또 다시 동생 얼굴만 보고 가버렸다. 엄마가 보고 싶었을까? 영화 마지막에 옥주는 엉엉 울고만다. 예상이 빗나가기를 바라는 시간들, 바람대로 되지 않는 시간들이 쌓여서 어른이 된다.
옥주의 겨울은 여름과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 영화 보고 뭘 써보는 게 정말정말 오랜만이다. 학교 때 이후로 처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