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2019/06 | 4 ARTICLE FOUND

  1. 2019.06.24 20190624 - 어쩌다 하나씩
  2. 2019.06.12 20190612 - 어쩌다 하나씩
  3. 2019.06.07 20190607 - 지독하단 생각
  4. 2019.06.03 20190603 - 어쩌다 하나씩

오리배

​하짓날
오리배를 탔다
생은 정점으로 치닫지 않았지만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휴일이다
오리배는 몸을 기울이는 쪽으로 뒤뚱 방향을 돌린다
내가 몸을 기울일 때마다 아내는 웃고 나는 기분이 좋다
호수 위에 둥둥떠서 페달을 밟는다
부표 안쪽으로만 안쪽으로만
세상은 위험투성이
선을 넘으면 안되지
멀리 오리 가족이 보인다
어미 오리의 뒤를 새끼 오리들이 따른다
호수 위에 둥둥 떠서 발을 놀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절실함
우리가 따라 잡기도 전에
오리 가족은 부표 너머 점으로 사라진다
우리 바로 곁에 선을 넘는 삶이 있다
정오의 태양이 호수 전체에 축복처럼 내리고
우리의 오리배는 길어진 낮의 한복판에서  ​
어디로 갈지 모르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AND

어른의 여름

6월​,
이름 모를 나무 아래
이름 모를 애벌레가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잎을 먹는다
그늘 한 점 없는 맨바닥에서
부러진 가지 끝의 마지막 한 장을 지걱지걱 씹는다
나무 위에 있었다면 나비나 나방이 될 수 있을 생명
지금은 발에 밟히거나 굶어 죽을 운명
길바닥에 널린 죽음, 또는 꿈틀거리는 삶
욕망은 흉폭하고
멀리 뚱뚱해진 여름산처럼
나는 비대한 몸을 가진 어른이 됐다
여름산을 보고 봄이 그립다면 인생을 돌아봐도 좋은 나이라고
언젠가의 당신이 말했다
마지막 한 입을 남겨 놓고
애벌레는 먹던 일을 멈춘다
돌아볼 일도 없이 마지막에 다가가는 삶
나는 도무지
당신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AND

 신혼여행 간 동료가 사무실로 한라봉을 보냈다. 맛있지만 어제 제주도에서 보낸 귤을 오늘 강원도 정선에서 먹는 세상이 달갑지 않다.

 농사지을 때는 나도 자주했던 얘기지만 농산물 생산비용에 농부의 인건비를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논과 밭을 공장으로 농산물을 대량생산되는 공산품처럼 생각하는 지독한 자본주의가 숨어있다. 자본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쉽게만 생각해도 치킨집 사장이 자기 인건비를 빼고 본인 수입을 계산하지는 않는다.

 마트에 가면 습관적으로 수산물의 원산지를 확인한다. 바다를 끼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온갖 수산물을 보낸다. 바다는 하나니까 당연한 건가. 다른 식재료도 마찬가지다. 식재료만이 아니라 매장에서 판매하는 모든 것이 그렇다. 지구가 하나 뿐이기 때문일까. 5대양에서 골고루 잡아 올린 수산물의 원산지를 읽으면 내 머릿속에서 지구가 돌고 있는 느낌이다.

 혼자서 간단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것들의 가짓수가 점점 늘어난다. 동물이 교미할 때 이성을 유혹하듯이 화려한 포장지로 혼자 가볍게 끼니를 떼우거나 술 먹고 싶은 사람을 꼬신다. 나도 정선에서는 혼자이므로 가끔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처지다. 궁금해서 한 번 먹어봤던 게 몇 년 전인데, 벌써 그것을 사서 먹는 행동에 익숙해졌다. 삶의 모양이 예전과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라면이 없던 시절을 살던 사람들은 언제든지 쉽게 끓여 먹을 수 있는 라면의 등장에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의 변화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알이 든 강원도 꽁치가 먹고 싶다고 했다. 엄마 기억으로는 단오 무렵 강릉에 오면 시장에서 꽁치를 팔았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고 한다. 분명 어린날의 나도 그 꽁치를 먹었겠지. 구워 먹고 조려 먹고 찌개로도 먹었겠지. 나도 예전에 먹었던 추억이 새로 먹는 즐거움보다 더 강한 나이가 됐으니 60넘은 엄마는 오죽할까. 아내가 알아본 결과 요즘은 엄마가 말한 그 꽁치가 많이 잡히지도 않고 어느 때 잡힌다고 특정해서 말해줄 수 없는 지경이라고 한다. 그것을 못 먹게 된 대신 냄비에 넣고 데우기만 하면 되는 꽁치 김치찌개가 여러 회사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받아들이고 살고 있지만 뭔가 지독하다는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받아들이기만 하고 노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주위에는 채식을 하거나 일회용품을 안 쓰거나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내만 하더라도 페트병 하나를 재활용 하더라도 속을 씻어내고 겉에 붙은 포장을 제거한다. 대나무 칫솔을 쓰고, 마트에는 항상 장바구니를 들고 가고, 반찬가게에는 반찬통을 들고 가고 플라스틱 제품을 가급적 사지 않으려고 한다. 고기도 잘 안 먹는다. 나도 어느 정도는 그 영향력 주위에 있지만 나는 노력보다는 포기의 느낌이 강하다.

 어차피 끝난 것 막 살자는 것은 아니다. - 실제로 몇 해 전까지는 이런 생각이 강했다. - 단순한 체념이다. - 체념은 짝사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 사랑이므로 이 세상에 내가 살아가므로.

 이 지독한 부정을 어찌할까.

 어찌할까로 끝나는 일기를 또 쓰고 말았다.

AND

말하지 않는 밤

작은방, 말하지 않는 밤
빈 구석에 웅크린 채
침으로 마른 침묵을 적시고
침묵에 꽃을 피웠네
여름밤, 말하지 않는 작은 방
적막에 꽃이 바스러지고
꽃 부서진 자리 아토피처럼 가렵네
긁은 자리마다 싱싱한 생채기가 피고
마른혀로 상처를 핥았네
상처는 아물고 매미소리 시끄러운데
내가 내게 말하지 않는 밤은 끝나지 않고
뱃속에 마른꽃만 자꾸 피고 지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