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2019/04/16 | 2 ARTICLE FOUND

  1. 2019.04.16 '입 속의 검은 잎' 시작 메모, '가는 비 온다'
  2. 2019.04.16 20190416 - 어쩌다 하나씩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기형도 시 전집이 나와서 오랜만에 기형도를 읽는다. 좋았던 것들은 그대로 좋고 새롭게 좋은 작품도 있다. '입 속의 검은 잎'의 시작 메모는 기억해 둬야 할 것 같아서 여기 남겨둔다.

 그리고 '가는 비 온다' 가 너무 좋다.

 

가는 비 온다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둥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은 떨어지고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저 식물들에게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
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
지금은 한 여자가 그 집에 산다
그 여자는 대단히 고집 센 거위를 기른다
가는 비......는 사람들의 바지를 조금 적실 뿐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음성은 이제 누구의 것일까
이 상점은 어쩌다 간판을 바꾸었을까
도무지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우산을 쓴 친구들은 나에게 지적한다
이 거리 끝에는 커다란 전당포가 있다, 주인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간을 빌리러 뒤뚱뒤뚱 그곳에 간다
이를테면 빗방울과 장난을 치는 저 거위는
식탁에 오를 나날 따위엔 관심이 없다
나는 안다, 가는 비......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도 죽음에게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들을 막아버리는
가는 비...... 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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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를 먹다

하루의 마지막 시간
셔터를 내리려는 분식집 앞에 멈췄다
순대 1인분 주세요
간 위 허파 염통 귀
간을 먹으면 눈이 좋아지고
염통을 먹으면 피가 맑아진다
먹으면 뭐든 좋아지는,
순대는 돼지가 주는 축복
마지막으로 둘이 먹었던 순대가 기억나지 않는다
당신이 태어난 날에 나 혼자 먹는 순대 1인분
순대는 둘이서 1인분을 먹으면 좋은 음식
​순대는 혼자서 1인분을 먹기엔 버거운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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