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를 읽었다.

핸드폰 속에 교보 이북 어플로 20권을 다 읽었다. 4대에 걸친 수 많은 등장인물, 읽으며 잠시도 그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어떤 자부심이 있다. 그렇지만 내가 30일 간 읽은 것을 30년 간 쓴 사람이 있다.

30일과 30년... 토지는 대략 40년 간의 이야기다. 수 많은 인간군상들이 몰아치는 삶을 살고 죽는다. 삶이란 살고나면 죽는다. 월선이가 죽었을 때 많이 울었다. 용이도 울고 홍이도 울었다. 얼마 있다가 용이도 죽고 임이네도 죽는다. 그 와중에 홍이는 살아서 대를 이었다. 죽음이란 한 문장 속에 있다. 어느해에는 호열자(콜레라) 때문에 좀 더 살았을 것 같은 사람들이 한 줄 만에 죽는다.

덧 없는 한 줄, 덧 없는 삶.

많은 페이지를 캡쳐 했는데, 나이 50 넘은 서희가 광복 직전에 명희에게 했던 말이 남았다.

"살기로는 모두가 각각이지만 성공한 삶이란 누구에게나 그것은 덧없는 소망일 뿐입니다." 

철의 여인이 있고 그 강철 같은 마음이 약해지고 약해져서 40년 짜리 대서사시가 저물 때 한 얘기다.

박경리 선생 존경한다.

교양으로 읽다가 울었다. 책 읽다가 운 게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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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개미가 흙 속으로 숨었다
제비가 지붕 아래로 숨었다
물고기는 물 속으로 숨고
사람들은 우산 아래로 자동차 안으로 숨었다
숨 쉬러 땅 위로 나온 지렁이가 꿈틀댄다
깡마른 몸뚱이로
숨어살던 서러운 생 위로 비가 흐른다
비 그치고서야 발견되는 죽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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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

당신 가슴에 얼굴을 묻고
심장 소리를 듣는다
당신이 깰까 싶어
그 소리의 모양을 숨죽여 그린다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그렇게 그려낸 내 사랑의 모양
너는 나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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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자동차가 없는 세계
아스팔트가 없는 세계
플라스틱이 없는 세계
나무와 흙과 공기와 바람 그리고 물
살아 숨쉬는 것만 존재하는 세계
과거이거나 미래인 세계
그곳에서 나 너와 함께 노래를 부르리
우리만 아는 말로 사랑의 노래를 부르리
지상의 마지막 날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리
아스카라타브라 아스카라브라타
아이루미네르타 아이루미르타네
이스코미노시스 이스코미스노시
그때 모든 것이 숨을 죽이리
너와 나 노래가 되어 사라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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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식목일이고 나는 산림청 직원이라 식목 행사에 다녀왔다. 60여 명이 모여서 높이 2m이상 되는 나무 50그루를 심었다. 마치고 도시락을 먹었다. 모든 행사마다 그러하다.  그럴때마다 느끼는데, 1회용 쓰레기가 너무 많다. 오늘도 수북히 쌓인 플라스틱 쓰레기를 봤다. 마음에 커다란 짐이 포개지는 느낌이다. 지난 가을에 체육대회를 했었는데, 버려지는 음식물과 쓰레기를 보고 절망감을 맛봤다.
 뉴스에선 태평양의 플라스틱 섬, 재활용 쓰레기 대란, 폐지값이 없어서 폐지도 잘 안주워 간다는 얘기가 나온다.
 점심을 먹고는 나무 심기 행사를 한 마을의 길을 돌며 쓰레기를 주웠다. 보기엔 길이 깨끗했는데 40kg짜리 마대가 비닐과 플라스틱으로 금방 가득찼다.​
 혼자 쓰는 내 방 베란다에 둔 자루도 페트병을 비롯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금방 부피를 채운다.
 몇해 전까지는 장난으로라도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 비닐봉지(어떤 때는 화장지)라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에 인류는 플라스틱과 비닐로 멸망할 것 같다.
 모든 것이 과하다. 이런 생각이란 게 결국은 또 반복이다. 이 세계에서 나는 무엇을 실천하며 살까? 어떻게 살까?
 그냥 다같이 망가져버리자는 기분이 빈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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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위를 걷는다

선 위를 걷는다
천지사방이 어둠
발 아래 가늘게 보이는 선을 따라 걷는다
선 위를 걷는다
누군가 나를 따라오고 있다
숨소리만 들린다
선 위를 걷는다
점점 자신이 없다
선이 갈라진다
어느쪽을 선택해도 마찬가지
선이 희미해진다
선 위를 걷는다
추락할 때까지​
그러니까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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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퇴근

방에 와서 밥을 먹고
방바닥을 닦아냈다
기타를 조금 치다가
설사를 했다
싱크대에서 세수를 했고
음악을 틀어놓고 만화책을 봤다
중간중간 담배를 피웠다
그러다 자정이 됐고 눈이 벌겋다
하품을 하는데 입 안에서 네가 나왔다
나는 내 방에 혼자 있고
너는 우리집에 혼자 있다
우리는 이 우주에서 서로 떨어져 있다
하품을 해서 조금은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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