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을 먹다

회식
삼겹살을 먹는다
왜 회식날은 삼겹살을 먹을까
너무도 가볍게 결정되는 삼겹살의 운명
일 인분 만 이 천 원이 너무 무겁진 않은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
삼겹살이 없던 시절에
우리는 뭘 먹고 실았을까
그 보다 오래 전 돼지가 먹히기 위해서만 키워지기 전에
우리는 뭘 먹고 살았을까
세상은 이미 다 지나간 일이라고 하는데
내 하루는 늘 퍽퍽하고
내가 지금 소주와 함께 삼키는 것이 살덩인지 뼈인지 아니면 기억인지
질문도 다 던지지 못하고 가는 생에
답을 정해둔 질문으로 가득한 삼겹살 얘기가
무슨 질문인지
모든 팀장들은 술을 잘 먹는데
대체 얼마나 술을 마셔야 팀장이 되는지
이 또한 무슨 답이 정해진 질문인지
왜 삼겹살을 먹으며
나는 질문만 남기는지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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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현답 4

야. 너 왜 그랬어?
죽을 거 같아서.
이 새끼야 너 안 죽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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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국을 먹다

피곤했던 하루
하소연 할 사람 없어 더는 갈 데 없는 하루
혼자서 순대국을 먹는다
기분상 소주도 한 병 먹는다
돼지 내장들이 뚝배기 안에서 부글부글 생을 끓이고
건너 테이블엔 마주 앉은 연인
순대국은 사랑의 메뉴
순대를 빼고 순대국을 시키던 당신이 떠오르고
오직 먹히기 위한 삶을 살았을 돼지 머리로 이어진다
머릿속에 취한 피가 도는 걸 보니
나란 인간은 먹기 위해 태어난 존재
터덜터덜 집으로 가는 길
돼지 내장들이 내 내장 안에서 부들부들 생을 죽인다
피곤했던 하루
혼자서 순대국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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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를 먹다

입 안에 기름기 가득 소고기를 먹는다
입술이 번들거리도록 소고기를 먹는다
미끈한 키스같은 등심을 곱씹는다
붉어진 당신 얼굴을 보며 붉은 고기를 굽는다
소는 짧은 생에 울다 죽었다
소고기보다 눈물이 붉다
눈물보다 당신이 붉다
붉은 마음으로 이별 소고기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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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을 먹다

아직은 교복이 어색한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콘을 먹으며 신났다
아직은 2월
계절이 바뀌는 일을 이렇게도 안다
​부러운 것은 시기하는 것
충동에 들게 하는 것은 다가오는 봄인가 지나간 젊음인가
주머니엔 꾸깃한 천원짜리 한 장
학교 앞 구멍가게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콘을 집는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세상에 있던 이름, 브라보
껍질을 벗기고 천천히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얼었던 마음이 녹아내린다
그리운 것은 코 앞에 봄인가 발 뒤편의 젊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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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현답 3

나는 무엇입니까
별것도 아닌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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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뱃속에 애벌레가 생겼다
뭘 잘못 먹은 것도 아닌데
꿈틀꿈틀 꿈틀꿈틀
나는 울렁거렸다

뱃속에 애벌레가 번데기가 됐다
뭘 잘못한 것도 없는데
꿀럭꿀럭 꿀럭꿀럭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뱃속에 나비가 날개짓을 한다
단지 널 사랑할 뿐인데
사뿐사뿐 사뿐사뿐
나는 하늘을 난다

그리움은 배고픈 나비가 되어
네 머리 위로 훨훨
끝을 모르고 활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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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현답 2 - 아이 생일

여보, 우리 애가 태어난지가 십 년 이네요
여보, 십년 전을 기억하면 어떻게 지금을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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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현답 1

하루만 지나면 잊을 일들을 왜 오늘 얘기하나?
내일이 와도 잊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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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 같지 않은 일에 화내지 않고 사는 게 참 어렵다."

어느날의 메모에 이렇게 적었다.

이 문장은 '꼰대'란 말과 연결된다.

어느 주말에 마트에서 장을 봤다. 한 손에 믹서기 상자를 안고서 부식 몇 가지를 더 구입해서 계산대로 갔다. 상자를 내려 놓고 먼저 계산대를 빠져 나오면서 아내에게 봉투 달라고 얘기하라고 몇 번 얘기했다. 그런데 아내가 봉투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화를 냈다.

계산하는 분이 봉투 드릴까요? 했으면 봉투 받으려고 했는데, 아무말 없길래 그냥 봉투 없이 계산을 진행했다고 저녁에 아내가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니 마음대로 안된다고 화내고 그러면 그게 바로 꼰대라고 했다.

깊게 반성했다.

내 맘 같지 않은 일은 크게 두 가지인데, 내가 내 맘 같지 않은 것과 남이 내 맘 같지 않은 것이다. 20대에는 내가 내 맘 같지 않아서 스스로 마음 고생을 많이했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아마도 아내를 만난 게 계기일거라 생각함 - 그건 극복을 했다. 서른 중 후반 지나면서 부터는 남이 내 맘 같지 않은 일에 화가 난다. 가끔 그 화가 터져나올 때가 있다. 

어제 영화 '공동정범'을 봤다. 인생살이는 내 맘 같지 않은 남들과의 연속된 충돌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사건에 대한 기억도 사람이 다르면 달라진다. 영화는 그 지점을 잘 파고들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이 충돌에서 시작한다. 영화 '공동정범'이 매우 뛰어난 점은 연출자가 주인공들 스스로가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고 인정할 때까지 - 인정할 수 있도록 - 인내했다는 점이라 생각한다.

이 글의 첫 문장과 '꼰대'란 단어를 가슴에 항상 새겨놓고 살아야겠다. 나이 먹고 꼰대 소리 듣는 것 만큼 처량한 게 없다.

그리고 끝까지 용산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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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 되뇌다

좋다고 자꾸 좋다 좋다 되뇌면 대책도 없이 좋아진다.
당신이

 

반성 - 장래희망

공부는 잘 못해도 다른 걸 열심히 하거나 잘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 다른 게 어째서 다 음악, 미술, 체육 아니면
요리, 목공, 미용 같은 기술 뿐이냐
장래희망 따위 없어도 살아갈 뿐이다

 

반성 - 아내의 말

남들은 다 잘 살아
우리는 너랑 나랑만 잘 살면 돼

  

반성 - 취미

아내는 매일밤 책을 읽고
나는 매일밤 술을 먹는다

 

반성 - 생각

자꾸 생각하면 생각한대로 저지르고 마니
자꾸 생각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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