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꿈

어젯밤 꿈에서 나는 새파란 젊은이였다
뭔가를 열띠게 설명하고 있었는데
온 몸에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잠에서 깨자마자 담배를 꺼내 물고
베란다 의자에 앉았다
창 밖에선 새들이 하늘춤을 춘다
아직 해 뜨기 전인데도
나는 새들보다 늦었다
20년 전엔 없던 베란다
입김과 담배 연기가 뒤섞이고
젊음은 베란다와 맞바뀌기도 하는 것
지금 이 순간은 또 무엇과 바뀔까
괜히 뱃속만 뜨겁다
AND

 오른쪽 귀 뒤에 뭐가 자꾸 난다. 곪았다가 아물고 곪았다가 아문다. 어떨때는 터지고 터진 자리에서는 피고름이 쏟아지기도 한다. 지난주 목요일에 종양인지 종기인지 아니면 다른 이름인지 모를 그놈이 또 생겼다. 그냥 두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자꾸 몸에 열이 나고 얼굴 오른쪽 전체로 통증이 번져와서 병원에 가서 째고 고름을 짜냈다.

 국소마취는 국소적인 쾌감을 동반하나? 주삿바늘인지 뭔지 모르겠는 날카로운 것이 내 뒷목에서 어떤 그림을 그렸고 그 선을 따라 짜릿한 통증을 느꼈다. 

 수술을 마친 의사가 물러가고 간호조무사 누나가 고름을 짜는데, 깜짝 놀란다. 애벌레가 나왔다면서 보여줄까요? 묻길래 산에 가면 애벌레 많이 본다고 했다.

 작년엔 엉덩이에 종기가 나서 같은 병원에서 꽤 오래 치료를 받았다. 몸 안에 곪아 터질 것들을 가득 넣고서 살아가는 날들이다. 몸에 생긴 고름은 째고 또 째면서 살면 그만이지만 생의 고름도 그러할까?

 정말 어딘가 곪아서 죽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아마도 나는 곪아 죽을 것 같다.

 오랜만에 일기가 곪아 죽는 얘기다. 주말에 아내랑 정말 잘 놀았다. - 소설 읽음, 만화책 봄, 노래 만듬. - 그런데 개운하지가 않다. 이렇게 나이 먹어 곪아 가는걸까? 어른들에게 했다가는 버르장머리 없다는 소리 들으며 귓방망이 후려 쳐맞을 말이다.

AND

토성의 고리 - 제발트

2017. 11. 17. 11:19

p.199~

17세기에 이미 섬 전체에서 지난날의 숲으로부터 남은 것이라고는 대개 하염없이 몰락해버리고 남은 미미한 잔여들뿐이었다. 이제 거대한 불길은 대서양의 반대편에서 타올랐다.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너른 땅 브라질의 이름이 프랑스어로 목탄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고등식물의 목탄화, 모든 가연성 물질들의 지속적인 연소는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을 확산시키는 동력이다. 최초의 유리등에서 18세기의 칸델라(휴대용 석유등의 일종)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칸델라의 불빛에서 벨기에 고속도로를 비추는 아크등의 창백한 빛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연소이며, 연소는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사물들의 내적 원리다. 낚시 바늘의 제작, 사기잔을 만드는 수공업,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제작,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연소라는 동일한 과정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고안해낸 기계들은 우리의 신체나 우리의 동경처럼 서서히 작열하는 심장을 갖고 있다. 인간 문명 전체는 애당초부터 매시간 더 강렬해지는 불꽃일 뿐이었으며, 이 불꽃이 어느 정도까지 더 강렬해질 수 있을지, 그리고 언제 서서히 사그라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장은 우리의 도시들이 빛을 발하고, 아직은 불이 번져간다.

 

- '아우스터리츠'를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AND

폐허

내게 폐허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
삶과 죽음이 일 센티미터 간격에 있는 일 제곱미터 짜리 공간에서
죽음은 일 센티미터미터마다 백 분의 일의 확률을 좁히며 나에게로 왔다
사랑의 폐허가 그렇더냐
아니면 이별이 그렇더냐
모든 폐허는 내 앞에 겸손하고
나는 모든 폐허 앞에 겸허하다
그러니
내게 폐허의 ㅍ자도 꺼내지 말라
AND

사랑가

 

사랑을 다 모아서
노래를 부른다(1 5 6 5)

너에게 가 닿도록
내 진심을 다해서(1 5 6 5)

사랑은 다른 말로도 사랑(1 5 6)
이런 몹쓸 이율배반(2maj 5 6)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것(1 5 6)
병적으로 파고드는것(2maj 5 6)
 
1 5 6 5

사랑이란 이름의
노래를 부른다(1 5 4 5)

너를 향한 마음을
네가 들을 수 있게(1 5 4 5)

나이 오십에도 투정이 느는 것
네가 나는 아닌데 네가 너도 아닌것(1 5 4 5)
우리가 남이 아닌 일(1 2 6)

어떤 말로 표현하든
아니, 말로 못해도(1 5 4 5 )
너랑 같이 있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다(1 5 6 5)

당신이 살아있어 줘서 고마운 거(1 5 6 5)
물음표가 없는 두 글자(1 2 6)

사랑이란 이름의
노래를 부른다(1 5 6 5)
네 안에서 내 손이 불타고 있어(1 2maj 6 1)

AND

어른

브로콜리를 데쳐 먹을 줄 아는 것
통북어랑 먹는 맥주맛을 아는 것
계절 따라 마음이 변해도
마음따라 살 수만은 없다는 걸 아는 것
영원한 것을 의심할 줄 알고
사랑도 조금은 아는 것
이것저것 아는 게 많지만
생의 비밀은 끝내 모른다는 걸 아는 것
다만 쓰디쓴 생을 소주 한 잔으로 넘겨 버릴 줄 아는 것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