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터널은 단축
터널안에선 생이 줄어든다
모든 생명이 살기 위해 태어났으나 죽는다
가장 아름다운 땅 위에서도 지치고 볶는다
모든 핑계로 술이나 마셔버린다
술이나 마신 핑계로 날이 밝아오고
이불 밖이 추운 계절을 지난다
산다
AND

카스테라

점심을 거르고
커피나 마실까 들어간 빵집
구석 테이블에 카스테라를 먹는 할머니
부드러운 빵을 갈비 먹듯 뜯어 먹는다
우유도 한 모금
우물우물 우물우물
콩나물 값 깎아가며
자식들에게 사주었을 카스테라
오래된 이름 카스테라
세상에서 가장 슬픈 빵
AND

참수

거미 한 마리 모기 머리를 삼긴채 죽었다
가장 안온한 곳에서 꽤나 행복한 순간에
매달린 삶을 매달린 죽음으로 마쳤다
한 줄기 찬 바람에 끝나버린 삶
이것은 때가 된 죽음인가
모든 죽음이 때가 된 죽음이라면 세상은 공평한 것인가
참수당한 모기는 본인의 처지를 납득할 수 있나
두 개의 죽음이 매달린 거미줄이 바람에 흔들린다
나도 따라 흔들린다
AND

온기

새벽에 잠든 당신을 안아본 게 얼마만인지
이 가는 소리와 작은 뒤척임
아, 곤히 잠들었구나
당신의 온기에 나는 잠이 깬다
손을 겹쳐 보려다가 깨닫는다
내 오른손은 네 오른손과는 맞닿지 않는구나
내 오른손과 겹친 너의 왼손
반대라야 만나지는 인연
이 온기로 나는 너를 넘어 나를 산다
오늘을 산다
AND

꽃말


나의 꽃말은 너
너의 꽃말은 그사람
얼레지의 꽃말은 질투
얼레지는 너무 슬퍼서 이름도 얼레지

AND

자신

먼데 있는 어머니께
어머니의 새남자에게
내 옆의 당신에게
내가 나인 나에게

다가오는 계절에게
자리를 지키는 나무에게
지는 나뭇잎에게
낙엽을 밟는 나에게

오늘,
어디서부턴가
하늘이 어둡고
시간이 부서졌다

두통처럼 갈라진 세상에서
자신이 없는 나에게

자신이 없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