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여름과 가을의 중간
선풍기를 틀어도 되고 안 틀어도 되는 계절
봄은 기억속에만 겨울은 두려움으로만 있는 시기
아직이란 말보단 벌써란 말이 더 입에 붙기 시작하는 나이
AND

낯설고 아름다운 나라에 도착하면 늘 생각해.
이곳의 장례 전통은 어떠한가.
무덤 속 머리는 동서남북 중 어디를 향하나.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나를 기꺼이 맞이해준다면.
실례가 안 된다면 여기서 죽어도 될까요?
물어봐도 화들짝 놀라지 않고
열쇠와 필기구를 말없이 건네준다면.
객사의 원래 뜻은 손님으로 죽는 것.
가장 멀리 뻗은 길 따라 몸을 누이고
그때 밤하늘에 뜬 삐뚤빼뚤한 별자리 하나를
삐뚤빼뚤한 내 영혼에 딱 맞는 관으로 삼는 거지.
낯설고 아름다운 나라에 도착하면 늘 생각해.
사람이 죽으면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
얼마나 좋을까?
죽는 곳은 여럿이어도
태어나는 곳은 하나라면.
같은 세계에서 같은 사람들이랑
부디 단 한 번이라도
삶이 고단하지 않을 때까지
죽음이 서럽지 않을 때까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 책은 안 읽고 뒤표지만 들여다보고 있다.
AND

숙취

눈을 뜨자마자
곁에 없는 것들 생각에 울어버렸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데
이마에선 식은땀이 나고
속이 불편하고
변기에 앉아서도 눈물이 나는데
주르륵 설사를 하고
여전히 속은 불편하고
뱃속의 것을 게우고
속도 없이 눈물이 나고
술이 다 깨도록 속절없이 울기만 했다
AND

카톡

카톡 프로필을 보면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애를 키우던지
개나 고양이를 키우던지
본인이 이쁜걸 봤던지
본인이 이쁘게 나왔던지
뭘 키우면 그게 이쁘고
뭘 안키우면 지가 이쁘다
AND

만두송   song ver

 

찐빵을 보니까  1
만두가 땡기네  3
당신은 만두국을 싫어하지만  4  5
만두국 먹고 피우는 담배는 참 맛있지  1  3  4  5  1

만두는 물만두
만두는 군만두
나는 만두국
딩신은 순대국  1 3 2 5

담배를 피우니까
커피가 땡기네
아메리카노 보단 찐한 밀크커피로
달달한 커피에 피가 끈적거리네

담배는 독하게
커피는 진하게

물보다 진한 피
피보다 진한 너

찐빵을 보니까
만두가 땡기네

만두국을 안 먹는
피보다 진한 너

만두는 물만두
만두는 군만두

만두국을 안 먹는
피보다 진한 너 2 5 1

AND

주말에 잘 쉬었다.

더위, 휴식, 복숭아, 더위, 에어컨, 복숭아, 정동진영화제, 더위, 게임, 복숭아, 냉면, 해수욕, 더위, 복숭아, 영화, 더위, 월요일 새벽 기상.

주말에 더웠다.

주말에 잘 쉬었고 더웠고 복숭아 많이 먹었다.

아내랑 즐거웠다. 아내가 슬프질 않으니 내 글이 별로라고 했다. 슬퍼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최근에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네 개를 만들었다. 아내가 뭔 포크송만 만드냐고 그런건 나도 만든다고 했다. 나는 이게 지금 내 한계라고 했다. 이 한계를 어떻게 넘을까?

슬퍼져서 아내 마음에 드는 글을 쓰고 한계를 돌파해서 아내 맘에 드는 노래를 만들면 나는 내가 되고 좋아지고 괜찮아지나?

아내가 나는 공감능력은 있는 편이라고 했다. 공감이 능력인가? 공감능력이 있어서 가까운 곳은 물론이고 지구 반대편의 어려움까지 내 어려움처럼 느끼고 안쓰러워하면 나는 진정 내가 되고 괜찮아지나?

사랑을 다 긁어모아다가 내 마음에 드는 노래를 만들면 나는 흡족하게 잠들 수 있나?

요즘 내가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부정적인 월요일이다.

노래 만들고 자야겠다.
AND

절반

누군가 말했지
밤꽃이 피면 반이 지난거라고
하지 무렵,
우리는 반짝이는 생의 반을 지나 어둠으로 기울기 시작하지
몸도 기울고 마음도 기울어 어둠에라도 기대야만 살지
기대어 사랑을 속삭일 어둠이 당신이라면 좋겠어
그렇게 점점 당신에게 기울다가
낮과 밤의 길이가 그 경계까지도 같은 날
생을 공평하게 들여다보는 단 하루가 오고
그날 당신과 서로의 이마를 쓰다듬으면 좋겠어
똑같은 만큼 서로 주고 받는 사랑이 아니라도 좋아
남은 날들의 절반과 그 절반의 절반도 그렇게 함께하면 좋겠어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