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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4.18 먹는 인간 - 헨미 요 1

먹는 인간 - 헨미 요

2017. 4. 18. 12:07
자그레브에서는 동물원 앞에 있는 식당 '막시밀'이 난민을 위한 무료 급식소가 되어 있었다.
묘한 광경이다.
동물원에서는 곰이 구경꾼에게 빵을 얻는다. 바로 바깥에서는 어마어마한 수의 인간이 목숨을 이어 가기 위해 음식을 얻으려고 줄에 선다. 내가 찾아갔을 때 메뉴는 독일이 원조한 깡통 수프와 폭찹이었다. 이 곳에 이슬람계 난민이 오는 경우는 드물지만, 사라예보에서 탈출했다는 예순여덟 살의 여성 이슬람교도인 니콜라는 얼굴빛도 변하지 않은 채 돼지고기를 씹어 먹고 있다.
식욕이란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순수'한 민족이나 종교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보스니아의 이슬람계 주민들도 원래 10~15세기 발칸 지방에서 성행한 보고밀파 기독교도였지만, 그 뒤 터키의 지배하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나쁠 리 없다.
먹고사는 것이 민족이나 종교에 대한 자부심보다 중요하다.
유엔 관계자에 따르면, 사라예보 동물원의 굶주린 곰은 자그레브 동물원으로 이송되는 길에 숨이 끊어졌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날벼락이다. 하지만 지금은 곰보다 인간이 문제다.
"일본으로 데려가 주시오. 먹을 것만 주면 화장실이든 하수구든 다 청소할 테니까."
예순한 살이라는 난민이 나한테 매달리면서 따라왔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부고이노에서 탈출했다는, 오른쪽 눈이 부연 남자다.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아내를 두고 왔고. 난 이제 사바 강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자그레브 중심부에서 네오고딕 양식 첨탑으로 하늘을 찌르고 있는 성슈테판 대사원.
이 사원도 유고 출신 가톨릭교 수녀인 마더 테레사의 내방을 기념해, 주로 거지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소를 두고 있다.
1991년에 세르비아 측과 전쟁 상태로 들어가기 전에는 하루에 두세명이 올까 말까 했는데, 지금은 급식 인원인 80명을 넘는 굶주린 사람들이 찾아온다.
수녀에게 취재 요청을 거절당했지만 나는 주린 배를 안고 불안한 발걸음으로 언덕을 오르는 남자들 틈에서 급식소에 들어갔다.
문이 열리고 겨우 5분 만에 사람들로 꽉 찼다. 문이 닫혔다.
먼지, 땀 냄새, 게다가 지독한 썩은 내 때문에 나도 모르게 기침을 마구 해 댔다. 벽에 걸린 마더 테레사와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이 때에 전 남자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크로아티아인만이 아니라 다양한 얼굴들이다. 터키계 얼굴이 보이고, 콧수염을 기른 옛 신사는 세르비아계였을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수프 냄새가 난다 했는데, 수녀가 "여러분, 이걸 들어야 식사할 수 있습니다." 하고 운을 떼더니 성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식사가 보류되었다. 누군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다음에는 기립해서 찬송가를 부른다. 숟가락을 꽉 쥔 남자들이 노래를 부른다. 악에 받친 듯 숟가락을 휘두르면서 노래하는 남자도 있다.
아니, 입만 뻥긋거리는 사람이 많다. 다리를 떠는 사람도 있다. 오로지 의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훌륭한 자선이지만 좀 잔혹하다. 바로 음식을 나눠 주면 안 될까?
11세기 기독교회의 동서 분리, 반목, 스라브족의 분열, 식전 의식이 이런 분쟁의 깊은 뿌리에 얽혀 쓸데없는 기억을 되살리지 않을까? 신앙이 없는 나로서는 조금은 지나친 걱정을 한다 싶은 사이에 찬송가가 끝났다.
아아, 그 뒤에 이어지는 남자들의 식욕은 대단했다.
다양한 민족의 피를 받은 각양각색의 얼굴들이 똑같이 맹렬하게 달라붙었다. 그러니 종파든 뭐든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정직하구나. 왠지 성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도 빵이 왔다. 받을 수가 없었다.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의 손이 창 밖에서 뻗쳐 왔기 때문이다.

- 크로아티아 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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