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카레를 먹을까
감자랑 당근을 씻는다
제주도에서 실려온 흙이
하수구로 빠져 나간다
하수도 바닥에 쌓였다가
홍수가 나면 바다로 간다
폭풍우에 실려 태평양을 건너간다
전남 무안 생산이라고 적혀 있지만
어쩌면 중국에서 서해를 건너왔을 양파껍질도 마찬가지다
돼지고기라고 다를까
카레가루라고 다를까
캘리포니아산 오렌지를 먹는 우리는
다 어디로 흘러갈까
뱅글뱅글 생각하는 동안 완성된 카레를
맛있게 먹는 수밖에 없다
-> 아오키 군은 자살을 했다.
"아오키 군, 자네는 왜 이런 곳에 와 있는가?"
묻는 사람이 있었다.
"왜라니,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닌가?"
이렇게 아오키는 대답했다. 이상하게도 방의 창문에는 쇠로 만든 격자문이 끼워져 있었다. 책장이 있어야 할 곳에 책장이 없고, 그 대신 천연 암석이 있었다. 그 바위 끝에는 지금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바위가 위험하게 걸려 있었다. 방 입구의 열린 곳으로 호랑이 우리가 보이고, 게다가 그 우리는 이쪽을 향해 문이 열려 있었다. 옆 창에서 무엇인가 들여다보는 것이 있는데, 자세히 보니 무서운 살모사였다.
"여기가 어디지?"
아오키는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알 텐데-감옥이야."
그 모르는 사람이 말했다.
듣고 보니, 방은 단단한 철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오키 자신은 강철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솨사슬의 길이 이상으로는 걸을 수도 어쩔 수도 없었다.
"왜 자네는 이런 곳에 와 있나."
"나는 법에 어긋나는 일을 별로 한 적이 없어. 보게나, 나는 겁쟁이야. 강도질하고, 살인을 하는 그런 용기 있는 사내가 아니야. 나는 벌레를 죽여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그 정도로 용기가 없는 인간이니까."
이렇게 아오키가 말했지만, 현재 감옥 안에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무슨 죄가 있어서 여기에 와 있는가, 누가 묶어서 이런 감옥에 넣어 버렸는가, 그것은 아오키도 모른다. 자신의 집이다. 집이다라고 생각하는 동안에 어느새 이처럼 감옥 속에 들어 있었다. 방구석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는 기분 좋은 향연 흉내를 내며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무리들은 감옥의 간수가 지날 때마다 손을 모아서 합장하기도 하고, 고마운 듯이 인사를 하며 자칫 간수의 발을 받을어 보이는 우스운 흉내를 내곤 했다.
변덕스러운 박쥐가 창으로 날아 들어왔다. '야 누군가 사바 세계에 있는 사람으로 이 박쥐 얼굴과 닮은 것이 없냐?' 라고 한 사람이 말하니까, '어디 얼굴을 보여라'라고 또 한 사람이 말을 꺼내서 각자 박쥐를 잡으려고 방안을 쫓아 다녔다.
왠지 이 소란이 두렵게 느껴져서 아오키는 창 쪽으로 도망쳤다. 그는 자신이 쓴 초고를 읽을 참이었다. 철로 만든 격자문을 잡으면서 창 밖을 보았더니 쓸쓸하게 홀로 서 있는 사람이 있었다. 가슴 위에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여자다운 입술을 약간 내민 것은,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창백한 뺨에는 이제 예전의 향기가 없었다. '저런' 하고 앙쾨는 무의식중에 손을 내밀어 그 사람을 감옥 속으로 끌어들이려다가 잠이 깼다.
-> 기시모토는 살았다.
"아, 나 같은 인간이라도 어떻게든지 살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고 깊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유리창 밖에는 회색빛 하늘, 젖어서 빛나는 초목, 물안개, 그리고 쓸쓸하게 농가 처마 아래에 서 있던 닭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사람들은 빗속 여행에 싫증이 나서 대부분 기차 안에서 잤다.
다시 쏴 하고 비가 내렸다.
젊은 굿맨 브라운은 황혼녘에 쎄일럼 마을의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문간을 넘고 나서 젊은 아내와 작별의 키스를 나누려고 고개를 돌렸다. 페이스라는 이름에 잘 어울리는 그의 아내가 예쁜 얼굴을 길가로 내밀며 굿맨 브라운을 부를 때 그녀의 모자에 달린 분홍색 리본이 바람에 나부꼈다.
YOUNG GOODMAN BROWN came forth at sunset, into the street of Salem village, but put his head back, after crossing the threshold, to exchange a parting kiss with his young wife. And Faith, as the wife was aptly named, thrust her own pretty head into the street, letting the wind play with the pink ribbons of her cap, while she called to Goodman Brown.
-> 예전에 EBS 라디오에서 들었던 걸 오늘 읽었다. 첫 문단이 딱 맘에 들어서 원문을 찾아봤다.
초반부터 한 방 먹여주고 시작한다. 가슴속에 있는 얼굴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얼굴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도. 재미있게 읽었다.
64p. 베니치아 화가의 기법으로 그린 세큐레의 초상화가 있었더라면 12년이나 계속된 여행 중에도 고향에 두고 온 옛 연인의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리운 여인의 얼굴이 가슴속에 생생히 살아 있다면, 세상 어느 곳에 있든 그곳이 내 집이나 마찬가지니까.
299p. 죽기 직전. 유년기의 마지막 시절에 들었던 시리아 동화가 떠올랐다. 혼자 사는 노인이 한밤중 잠에서 깨어 부엌에 가서 물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 물 컵을 탁자에 놓는데 그곳에 놓여 있던 초가 없어진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어디선가 실낱 같은 빛이 비쳐들고 있었다. 노인은 그 빛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자기 침대에 낯선 사람이 손에 촛불을 들고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노인이 물었다. "댁은 뉘시오?" 그러자 그 이방인은 "죽음이다."라고 대답했다. 노인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그러고는 "이제 왔군." 하고 말했다. 죽음은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그래." 하고 대답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노인은 "아니야. 너는 다 끝나지 않은 내 꿈이야." 라고 단호하게 말하고는 이방인의 손에 있는 촛불을 단숨에 불어 껐다. 그러자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노인은 빈 침대에 들어가 다시 잠을 청했다. 노인은 그 후로 20년을 더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