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를 먹다

동네 슈퍼 빵 코너 구석
2,500원 짜리 햄버거
터미널 제과점에도
다른 동네 마트 빵 코너에도
같은 가격인 납작한 햄버거
시간당 6030원 최저 시급을 받고
식품공장에서 햄버거를 만드는 사람들
그 햄버거를 여기저기로 운반하는 사람들
나랑 같은 걸 먹으며 맛있어 할 사람들
하지만 어쩌면 삶이 지겹기만 할 사람들
빵 사이에 고기랑 야채
싸구려 소스와 허름한 포장지
쉴틈 없는 제조 공정과 굳건한 대량생산 시스템
자신의 생산품을 제 돈을 주고 소비하는 대중
반복 반복 반복
삶 삶 삶
그것은 햄버거

AND

교감

잠든 너를 직각으로 내려다 본다
그대로 있어 내가 네 발을 물고 잘게
꿈틀대는 발끝으로부터 네 하루가 전해져 오고
오직 그렇게만 너의 사정을 전해 들을 수 있는 밤
돌아누워 네 정수리에 가만히 손을 대고 내 하루를 전해주는 밤
너와 나 그리고 세상이 수평으로 교감하는 밤
AND

大體로

시간이 지나면
대체로 상처는 아문다
대체로 고통은 잊혀진다
대체로 삶은 사라지고
그 사라짐마저 사라진다
자기 꼬리를 뜯어 먹고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 앞에
도대체 내 사랑은 어쩌란 것인지
AND

기념하는 밤

10년 째 다닌 단골 식당의 마지막 김치 볶음밥을
우리만의 골목길을 떠도는 공기의 운율을
격정이란 말로는 모자랐던 뜨거운 밤을
우리를 낯선곳의 환희로 이끌던 너의 자동차를
그 안에서 흘러 나오던 네 목소리를
너에게만은 아름다웠을 나의 노래를
차분히 내리는 눈발마저
기념하는 밤
우리의 사랑을
이 사랑의 끝을
AND

거리

너와 나 사이의 거리
100미터, 또는 42.195킬로미터
느리게 달려도 25초에 닿는 거리
걷고 또 걸으면 하루도 걸리지 않는 거리
거리를 수치화 하는 건 인간 뿐이라
너와 나 사이의 거리를 잰다
사랑은 언제나 생보다 먼저 사멸하는 것
하여 항상 먼저 떠오르는 건 사랑의 거리
인간이 물질이라 사랑도 물질적이다
온 몸을 넘치도록 가득차 오르는 끝이 없는 거리
이내 사라져버릴 거리
너와 나 사이의 거리
AND

악몽 5

언제부터였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사다리를
맨몸으로 오르고 있다
뜨거운 햇살에 살 가죽이 녹고
찬 바람에 손발이 얼어 붙는다
같은 계절이 다시 반복되도록
그저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
끝에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까
매달린 두 손을 놓으면 그곳이 지옥이다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것일까
힘이 빠져 발을 헛디디면 그곳이 천국일지도 모르지
영원히 끝날것 같지 않은 사다리를
맨몸으로 오르고 있다
AND

우리 엄마는 나보다 21살이 많고 고교를 졸업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지만 경북 영주에서 언니들이 공장에 다니던 서울 문래동으로 와서 언니들이랑 같이 일하다가 옆집에 고모랑 같이 세들어 살던 우리 아버지랑 결혼했다.

어려서 낳은 큰 아들인 나를 끔찍히 아꼈고 이웅평이 미그기 타고 내려 왔을때는 실제상황이라는 경보를 듣고 어린것들(나와 동생) 걱정에 펑펑 울었다고 한다. 전형적인 경북 남자에 관료 출신인 외할아버지의 영향 탓인지 내가 열 다섯 살 때까지는 엄마한테 많이 맞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에 엄마가 때리는 게 안 아프게 됐고 엄마도 그걸 알았다.

내가 고 2때 술장사를 시작했고 오산으로 옮겨서 장사한 건 99년이나 2000년 부터인가? 대학 1학년 때는 학비를 받았지만 나머지는 어찌어찌 벌어서 다녔다. 엄마는 그걸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그게 고맙다고 생각한다. 우리집은 정말 가난했고 나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엄마랑 나는 몇 번인가 불을 끄고 누워서 손을 잡고 울었다. 어쩌면 나만 울었다. 어느날은 내가 우니까, 엄마가 울지말고 씩씩하게 살라고 했다.

업종이 업종이다보니 손님들한테 맞은 날도 있고 나한테 얘기하지 못한 기분 나쁜 일들은 숫자로 셀 수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게 안에서 술병이 깨지고 취한 사내들이 아우성을 쳤겠지. 엄마는 그걸 어떻게 참았을까? 이혼한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참았을 것 같진 않다.

내가 산림보호직 시험 합격했다니까 가장 좋아했던 엄마인데 막상 일 시작하니까 정말 바빠서 전화할 짬도 안난다. 내가 타이밍 놓쳐서 전화 자주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니까. 그래도 좋단다.

그런 엄마가 집을 샀다.


엄마집

엄마가 집을 샀다. 볕 잘 들고 바람 잘 통하는 아파트 1층이다. 집이 좋다. 근데 눈물이 난다. 오전에 엄마집에 들렀다. 데운밥이랑 뻗뻗한 대파가 들어간 계란말이랑 볶지 않고 삶아서 무친 오뎅, 생강이 많이 들어가서 맛 없는 소고기 무국을 엄마랑 같이 먹었다. 맛 없었다. 근데 눈물이 난다. 엄마랑 헤어지고 천안으로 출장 왔다. 엄마집이랑 오랜만에 둘이서만 먹은 밥이 자꾸 생각난다. 그래서 자꾸 눈물이 난다. 엄마엄마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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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친구를 만났네
아파트 앞 상가에서도
양갈비 뜯을 수 있는 21세기를
나는 무척 사랑하네
나도 어떤 자랑을 하고 싶었는데
친구는 지 얘기만 하네
씨펄, 나는 그래도 좋네
술을 다 마시고
요즘은 타워라고 부르는
아파트 상가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네
여긴 누가 치우지,
생각하다가 친구에게 묻네
여긴 누가 치워 관리비에 포함돼
친구가 뭐라뭐라 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물음만이 남네
타워 화장실을 치우는 분들의 처우와
여의도의 어느 빌딩을 치우는 내 아버지의 처우
그리고 친구에게 술이나 얻어 먹는 지금의 내 처지가
과연 올바른가
과연 정의로운가
과연 이 세계는 사멸할 것인가
과연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그렇더라도 사멸하는 세계에서
사랑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과연 너는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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