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단 - 박근혜 대통령께

농단이란 말을 아십니까
대학교도 졸업하신 분께 실례인 질문인가요
당신께는 실례란 말이 실례가 아닌 것 같아서
그 뜻을 몰라도 사전을 찾아볼 분이 아닌 거 같아서 알려드립니다

<농단 [壟斷 / 隴斷]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을 이르는 말.
예문 - 검찰은 이번 기회에 권력에 기생하는 악덕 상인의 농단을 뿌리 뽑겠다고 다짐하였다.>

농단이란 말이 농담처럼 느껴지는 예문입니다
검찰은 대통령의 권력에 기생하고
악덕상인도 대통령의 권력에 기생하는데
지들끼리 무슨 뿌리를 뽑을까요

당신 친구가 국정을 농단했다는 뉴스가 세상을 도배합니다
당신은 친구에게 기생하는 사람인가요
나라의 정치를 국정이라고 합니다
대통령이 월급을 받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표를 준 이유입니다

권력이 권력에게
당신이 당신 친구에게
기생하고 기생하여 퍼트린 병의 악취가 온 나라에 가득합니다

유치원생이 과자를 한 봉지 살 때도 신중을 기하는 것이 보통의 세상입니다
당신은 그런 삶을 살지 않았다구요
보통의 삶을 모르는 사람이 어찌 한 나라의 국정을 돌보시려 합니까

당신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길 바라지만
그게 어렵다면 그저 하야하십시오

이 모든 게 농담이면 좋겠습니다
AND

불현듯


눈 뜨자마자 담배를 피우다가
늘 마시던 술을 한 잔 더 먹다가
오랜만에 축구를 한 게임 뛰고 나서
불현듯
나이 먹었음을 느낀다
이 사랑이 다 끝나간다는 생각에
불현듯
슬퍼진다
AND

지금 내가


지금 내가 사랑을 생각하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까
내가 비겁한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사랑이란 두 글짜를 떠올리고
시랑에 얼마나란 없다고 되뇌는 일은
당신을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입니까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까

가을이란 두 글자가 사랑으로 바뀌고
사랑이란 두 글자는 이내 겨울로 향합니다
끝으로 향하는 사랑은 결국 부서집니다

지금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견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AND

집에 보일러가 터졌다. 정확히는 온수 배관 어딘가가 터졌다. 다행히 실내로 물이 스미기 전에 온수쪽 호스를 잠갔다. 뜨거운 물 매일 쓰는 집인데, 지난 겨울에 보일러를 안 돌려서 터졌다고 얘기하는 주인아줌마는 별로지만 보일러 새로 놓고 마루도 새로 까느라 돈이 많이 들었다니까 그런가보다 한다. 그때 수도 파이프도 다 교체하시지 그러셨어요.

이렇게 적고 나니까 엄청 뒤끝있네.

보일러를 뒤로하고 GMF 갔다왔다. best song 'Ready, Get Set, Go!' 박새별 미쳤다. best performance 'HYUKOH' 혁오 미쳤다. 직업이 음악인 사람들의 세계를 들여다 본 기분이다.

일요일 오전에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페북 타임라인을 보고는 서울대병원에 갔다가 부검영장 강제집행 하지 않는다는 뉴스에 바로 발길을 돌렸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정부와 경찰을 상대로 바른 판단이었을까? 그저 내가 비겁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어제 출근길에 삽당령에 일 다닐때가 더 좋았다는 얘기를 동료와 나눴다. 단서는 '고용이 계속 보장된다면.' 이다. 그렇다고 고용이 쭉 보장되는 지금이 좋은 것도 아니다. 아내 페북에서 농사 짓던 때에 생의 비밀에 다가간 것 같았단 문장을 읽고 울컥했다. 남들이 다 하고 싶어하는 직업군에 있으니 자부심을 갖고 일하라는 얘기를 건너 들었다. 속으로 실적의 세계에서 자부심은 개뿔. 생각했다.

집 수리 문제도 있고 생활 전체적으로 약간의 환기를 위해서 이사를 가기로 했다. 더운날 슈퍼에서 하드 사 먹듯이 중대사를 결정했다. 표면적으로는 이렇게 단순한 것이 살아가는데는 더 좋다고 생각한다.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박근혜한테 '연설문 쓰는법' 이 아니라 '솔직한 글쓰기' 강의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어지러운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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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


작은 새가 춤을 춘다
전깃줄이 흔들린다
내 눈이 흔들린다
내 마음이 흔들린다
손이 떨리고
몸이 떨린다
새가 날아간다
내 눈에서 멀어진다
내 마음에서 멀어진다
떨림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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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미터

반경 일 미터 안에 너와 나 뿐
우리뿐인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까
이 진공 속에 숨이 멎을까
우리는 누구에게 묻지도 않고
이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AND

망해라 정말


편의점 햄버거를 먹으며
신자유주의 종말을 읽는
주말 재택 당직 근무
한 입 한 입
파견법, 비정규직, 세월호
그리고 어느 농부의 이름을 새긴다
노동자, 민영화, 구조조정, 성과연봉제를
목구멍에 밀어 넣는다
한 숨 자고 일어나
이유도 없이 방을 치운다
쓰레기 위에 쓰레기
쓰레기 안의 쓰레기
씨팔, 또 배가 고프고
이 문명의 마지막 형태인 편의점에 간다
편의점의 최첨단 상품인 도시락을 산다
이렇게 나는 세상 끝에 사는 사람
나열만 있고 행동은 없는 사람
그러니 정말
망해라 정말

AND

적당

적당히 푸른 하늘이다
적당한 가을이다
작정하고 나설 곳 없는
적당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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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놀이

고깃집 앞에서 갈비 냄새를 안주로 깡소주를 마시는 밤
누구 피를 빨아 먹고 자랐길래 당단풍 나무는 이토록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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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보니 별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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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일요일 아침


바다 건너 먼 나라의 프로 야구팀을 응원한다
바다 건너 또 다른 나라는 내전으로 들끓고
또 다른 나라는 허리케인으로 무너져 내렸다
어떠 나라에는 먹을 물도 부족하고
먹을 것이 넘쳐서 수입한 쌀을 바다에 버리는 나라도 있다
이웃 나라 원전에선 지진으로 방사능이 누출되고
내 나라에선 전쟁, 지진, 원전이란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이래도 되는걸까

염소의 저주에 걸려있다는 응원팀이 이겼다
그런 일 따위 아랑곳 않고
겨울이 닥쳐 오고 있다
AND

그저 그런


화가 나서
잠이 안온다
소화가 안된다
사는 게 불편하다

풍요를 살기 때문에
외려 어떤 결여를 의심할 수 있다
사랑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거리의 활기는 실제하는데
세상의 거짓은 어디에서 오나
철학자가 되려는 것도 아니다

씨팔
개새끼들
욕이나 하려는 건 아니었다

다 당신들 탓이라고 한다
그 말은 진심이지만 진실은 아니다

그저 내가 인간이라 자신이 없다
잘 때만 빼고는 항상 머리를 굴리는 인간
자신의 희망사항을 걸고 내기를 하는 인간
먹고 싸는 거 빼면 별 것도 없는 인간

애초에는 이러려던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무엇도 없었다

그저 그런 인간
AND

가을

때를 놓친 마지막 한 마리 제비가 어딘가로 날고
구름의 그림자 아래 누워서 하늘 끝에 너라고 적으면
네 웃음소리가 시퍼런 가을처럼 온 사방으로 떨어진다
AND

누군가 죽었다


누군가 죽었다
그럼 누군가는 살았나
누가 누구를 죽이지 않는 죽음도 있나
자연히 죽는 일은 그럴까
죽은놈은 죽고 죽인놈은 산다
생명의 역사는 산 생명의 책임

네트워크로 모든 게 연결되고
하이테크란 말도 지난 세기의 말인
오늘날,
우리는 죽음을 방기(放棄)하기 쉬워졌다

물려줄 것 하나 없는
모순같은 세상과
모순이란 단어 위에
올라앉은 소주잔

누군가는 죽었고
우리들은 살았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