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서

까마귀 우니
개가 짖는다
고양이는 툇마루에 동그마니 앉았다
너 때문에
내 마음이
울다가 짖다가 주저 앉았다


상반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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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의 노래


하품을 하는데 입 안에 벌이 들어왔다
얼른 입을 닫았다
입 안에서 벌이 춤을 췄다
그 소리가 몸 전체에 울렸다
몸이 저절로 춤을 췄다
혀를 말았더니
놈이 혀 끝을 쐈다
아파서 이를 앙시물었다
찍, 소리가 났다
씹어 삼켰다
쏘인 혀가 놈의 날개와 몸과 눈과 꼬리를 느꼈다
어쩐지 단 맛이 났다
혀가 붇기 시작하고
갑자기 저절로 노래가 나왔다
온몸을 떨며 노래를 불렀다
부은 혀가 입을 틀어 막았는데도
계속해서 달콤한 노래가 나왔다
붕붕붕 붕붕붕
내 주위로 몰려든 벌들이 춤을 췄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주사를 놔줬다
붓기가 가라앉고 노래가 멈췄다
벌들은 떠나고
쓸쓸한 바람이 불었다
다시는 노래를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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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1밀리 차이로 괜찮아가 쇈찮아가 된다
괜찮아 그냥그냥 사는거지
쇈찮아 그냥그냥 사는거지
괜찮든 시원찮든
그냥그냥 사는 건 다 똑같다
암만해봤자
밥 한끼 먹는 건 다 똑같다
세상에 쓰레기나 하나 더하고 가는 건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건
도처에 즐비한 삶 중에 하나인 건
여기에 이런 삶이 있습니다, 라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이런 삶이 있는 건
나무 한그루, 밤바다, 당신
그것이 무엇이든
기대어 사는 건 다 똑같다
1밀리 차이로
다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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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가게


사랑하는 당신,
비 오는 날에 빈 가게에서 만나요
다방 외상값은 기름 종이에 적어두고
비 오는 날은 빈 가게에서 만나라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텅 빈 가게에서 만납니다
우리는 빈 가게에서 사랑을 합니다
사랑은 공허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부둥켜안고 먼지투성이의 바닥을 뒹굽니다
서로의 뼈와 살을 탐합니다
주인도 없고 물건도 없는 그곳에선
텅 빈 진열대만이 우리를 훔쳐 볼 거예요
그 시선이 부끄럽다면 부끄럽지만 그렇게 부끄러울 것도 없어요
모든 열기를 뿜어내고서
우리는 서로의 몸에 붙은 먼지를 털어주면서 웃습니다
그리곤 입을 맞춥니다
사랑의 기쁨이 텅 빈 가게를 가득 채울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주인 없는 카운터에 빈손을 내밀고 가게를 나옵니다
우리는 뼈다귀 해장국도 먹지 않고 헤어집니다
어차피 지금 내리는 비가 우리의 끈적함을 씻어낼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먹어도 먹어도 생도 사랑도 공허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비 오는 날의 빈 가게는 그런것이기 때문이에요
내 사랑,
우리 비 오는 날에 빈 가게에서 만나요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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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즐겁고
가족들은 집요하다
세상은 썩었고
나는 병들었다
하늘은 투명하고
거리는 우울하다
내 마음 속의 불온을
나는 알고 너는 모른다
당신들은 정말 나쁜놈들이고
그걸 아는 나는 더 나쁜놈이다
그 간격을 메우기가 어렵다
이 비관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 주말 내내 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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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하게


며칠동안 오른쪽 어깻죽지가 뻐근뻐근 하더니 날개가 돋았다
또 며칠동안 그 자리가 간질간질 하더니 날개가 내 키만큼 자랐다
입을 옷이 없어서 웃통을 벗고 편의점에 갔다
컵라면 값을 계산하면서 날개를 펄럭거렸더니 알바생이 웃었다
자신감이 생겨서 소주도 한 병 같이 샀다
취해선지 날개 때문인지 몸이 삐딱하니 세상이 삐딱해 보이고
사람들은 나를 외날개라고 병신이라고 놀렸다
나쁜짓을 많이해서 벌을 받았을까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건물 옥상에 올랐다
외날개 때문인지 추락하고 있기 때문인지 세상이 계속 삐딱하게 보였다
마음속으로 착하게 착하게를 조곤조곤 말했다
착하게 착하게
삐딱하게 삐딱하게
떨어진다 떨어진다
수평이 된다

-> 마무리가 잘 안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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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

잠든 아내의 숨소리를 듣다가 아내의 숨과 내 숨을 겹친다
품안에 잠든 고양이의 배에 손을 얹고 있다가 그르렁거리는 그 작은 몸의 움직임에 내 숨소리를 얹는다
홀로 완벽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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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새끼들

사진 2015. 6. 12. 18:55


박새? 오목눈이? 딱따구리?

950고지 막사 건물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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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없는 친구의 가게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친구이거나
친구의 친구이거나
내 친구이거나
누구의 친구도 아닌 누군가를 기다린다
어쩌면 나는 너를 기다린다

이것은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쓰고
오지 않을 답장을 기다리는 일
마음속으로만 너을 외쳐 부르는 일
눈물이 마르기 전에 눈물을 다시 채워 넣는 일

바다는 저만치 저물어 가는데
누구도 친구의 가게를 찾지 않고
그래서 나는 나를 기다린다
새벽이 오도록 나는 오지 않는다
나는 내 발끝도 벗겨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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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쿠테타를 일으켜서 독재자가 되야겠다

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독재자가 될 것이다

군대를 없애야겠다
군대 없는 나라에는 전쟁이 없을 것이다
청년들은 나를 영웅으로 생각할 것이다
군사 쿠테타는 역사속의 일로만 남을 것이다

사교육을 없애야겠다
학원이 없어지니 아이들은 얼마나 좋을까
사교육의 원흉인 대학교도 없애야겠다
내 나라는 학벌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아파트를 없애야겠다
층간 소음으로 사람이 죽는 일도 없고
임대 아파트 산다고 무시 당하는 사람들고 없고
주민의 멸시를 못이겨 자살하는 경비원도 없을 것이다

골프장을 없애야겠다
전 검찰총장이 캐디를 성희롱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검찰 얘기가 나온 김에 검찰도 없애야겠다
경찰도 없애서 사람들이 마음껏 집회를 열 수 있도록 해야겠다

기업 총수가 나에게 뇌물을 주면 뇌물은 뇌물대로 받고 법인세는 더 올려야겠다
내가 받은 뇌물로는 맛있는 걸 사 먹고 올려 받은 세금으로는 국민들을 먹여야겠다
말을 안 들으면 재벌을 해체하는 것도 괜찮겠다

내 마음대로 법을 바꿔야겠다
먹는걸로 장난치는 사람은 평생 감옥에서 자기들이 팔아치운 것만 먹도록 해야겠다
광화문 광장을 불구덩이를 만들어서 내 마음에 안드는 놈들은 다 거기에 던져넣겠다

원전을 없앨 것이다
밀양의 할매들이 얼마나 나를 좋아할까
전기가 모자라다고 하면 서울 한복판에 초대형 원전을 만들어도 좋겠다

교회를 없애야겠다
교인들은 십일조를 안 내도 되니 참 좋겠다
천당에 못가서 불안할까
아니, 기도만 하고도 천당에 간다고 생각하니 좋을 것이다.

부정선거가 판치지 않도록 선거제도도 없애고
비정규직이 문제니 기업들을 싹 다 없애야겠다
대법관들의 목을 자르고
혼자서 내 마음에 맞게 헌법을 써야겠다

뭐든 문제가 생기면 다 없애야겠다
독도도 없애고 국회도 없애고 fta도 없애고 여객선도 없앨것이다
노점상 단속 못하게 노점상 다 없애야겠다

순서대로 없애기도 귀찮으니 한꺼번에 싹 없애야겠다
이렇게 다 없애고 나면 누구도 나를 못 없앨것이다
그때가 되면 내가 제일 큰 문제니 나를 없애야겠다

자식을 갖지 않을테니
사람들은 오직 나만을 위대한 독재자로 기억할 것이다

독재자가 되기전에
우선 해장술부터 먹어야겠다

-> 언젠가 장난으로 써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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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내 발바닥에 닿은 네 종아린 이렇게나 부드러운데
사는 일이 재미가 없다
내 손끝이 너의 갈라진 곳에 닿을 때
이 온기만 있다면 아무것도 통하지 않아도 좋은데
사는 일이 재미가 없다
내 장난에 네가 활짝 웃어도
꿈 속에서 너의 냄새를 맡아도
사는 일은 여전히 재미가 없다
새들이 울기 시작하는 시간, 눈도 뜨지 못하는 너의 뺨에 입을 맞추고
숨길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며 일을 나가도
월급날, 너와 오징어 회를 먹고 배가 불러도
사는 일은 여전히 재미가 없다
내 마음대로 내 양껏 살아도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마음처럼 되는 일이 없다
살아도 살아도
사는 일만은 재미가 없다
이것만은 어찌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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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애 낳아서 키우기 어려운 시절이라고 한다
페이스 북 생일 알림을 보면 어디에나 즐비한 것이 삶이다
여기저기 올라오는 사진들을 본다
절반은 먹는 거고 나머지 절반은 아기다
사람들은 먹고 살기 어렵고 아이 기르기 힘든 이런 시절에 먹고 아이를 낳는다
애 낳아서 키우기 쉬운 시절은 없었다
이런 시절에 태어났으니 이런 시절의 아이가 되면 그만이다
그러다가 이런 시절의 어린이가 청소년이 어른이 되면 그만이다
영원한 존재는 없으니 인류는 절멸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그러다가 또 이런 시절의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
그 아이 또한
필멸을 향해 살아갈 것이다
아가야, 살아서 보자

-> 치과에서 순서 기다리다가 막 써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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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사자들이 기린의 긴 목을 뜯어 먹는다
금연중인 내가 문득 아내 팔뚝을 물어 뜯는다
인간이고 동물이고
배고프면 먹고 화나면 물어 뜯는다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 디벨롭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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