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날까


달아날까 달아날까
너에게로만 너에게로만
달아날까 달아날까
너에게서만 너에게서만

날아갈까 날아갈까
너에게로만 너에게로만
날아갈까 날아갈까
너에게서만 너에게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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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수육을 배달 시켜서 아내랑 먹었다
배달 탕수육은 결혼하고 처음이다
우적우적 고기를 씹으면서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다
미안한 곳이 미안한 일이 미안한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런데도 탕수육 접시를 깨끗히 비우고는 태연하게 커피를 마셨다
커피콩을 갈면서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다
인스턴트 커피를 마셨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4월에 하루도 못 쉬어서 온몸과 마음이 뻐근하다
배 부르고 뻐근뻐근한 채로 이부자리에 누웠다
누워서 이런걸 적어 내려가는데, 계속 미안하다
이러다 자겠지,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으로 바뀐다
한심하다가 잠들겠지
아침이면 미안함도 한심함도 뻐근한 마음도 잊겠지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면 또 미안하겠지

이 비관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평년기온*


어제의 꽃과 오늘의 꽃이
작년의 나무와 올해의 나무가 다른 것처럼
언제나 그보다 높거나 낮은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다
누군가는 알코올 중독으로 죽고 누군가는 술은 입에도 안 댔지만 간암에 걸려 죽는다
오직 삶과 죽음만이 평균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어제의 사랑과 오늘의 사랑이 다르니
나는 매일 태어나고 매일 죽는다
그렇게 순간순간 평균에 다가간다
언제나 그보다 높거나 낮다가 그것에 다다르는 것이 인생이다

*최근 30년 간의 평균 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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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사내


사내는 구름 위에서 살았다
구름을 뜯어 먹었다
구름에 파묻혀 낮잠을 잤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오줌을 갈겼다
그 오줌이 비가 되어 땅을 적셨을까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흘러흘러 걱정이 없었다
어느날 사내는 구름이 점점 작아지고 있음을 알았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오줌도 마렵지 않았다
그러다가 외로워졌다
외로워서 울었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펑펑 울었다
그 눈물이 비가 되어 땅을 적셨을까

사내는 구름에서 몸을 던졌다
그 몸은 낮은곳으로 낮은곳으로 향했고
추락중인 사내는 구름을 보며 웃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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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3 - 피로

그때그때 2015. 4. 23. 23:51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에 왕산 목계에 사는 형이 있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지만 나는 처음 봤을 때부터 이 형이 좋았다.

이 형이 강릉 산골짜기 왕산에서 몇 년 살면서 느낀 것은 시골에서는 내 땅, 내 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하여 무리해서 빚을 내서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있다. 나도 시골에 오래 살진 않았지만 촌에서는 내땅과 내집이 중요하다는데 깊이 공감한다.

- 일우야 낚시 좋아하냐
- 아니오
- 여기가 내 낚시터야. 지금 집 짓는 곳 앞에도 고기 잘 잡힐만한 곳이 있어. 일 안하는 주말에 왕산 올라와서 고기 구워 먹고 저녁 때 고기 잡아서 다음날에 매운탕 끓여 먹자. 사는 게 그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 네. 좋아요.

오늘 아침 출근길에 나눈 대화다. 형은 내 아내가 그런 즐거움을 좋아한다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볼음도에서도 느꼈다. 나이를 먹을수록 맛있는 걸 먹고 하루하루 즐겁게 지내는 것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된다. 사실 이건 나이랑 상관없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다.

어차피 세상은 내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것에 괴로워하면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면 괴로움이 커진다. 하지만 본인들 눈에 뒤틀린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세상이 바뀐다.

닭과 달걀의 패러독스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하나마나 한 것이란 것은 집에 테레비가 있는 강원도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직접적인 내 일이 아니니 대형 공사를 따내서 자기 주머니를 챙기는 놈이 있거나 말거나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왕산 사는 형도 좋아하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도 좋아하는 나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신경써야할까?

낮에 바람이 많이 불었다. 쉬다가 담배를 피우는데, 내가 반 바람이 반을 피웠다.

여지껏 쓴 것이 다 바람앞에 부질 없는 생각이다. 머릿속이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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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에는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
한 여름 동네 사람들 쉬어가는 버드나무도 좋고
한 겨울 실연당한 어느 여인을 안아주는 자작나무도 좋다
잣나무가 되어서 잣을 떨궈도 좋고
소나무가 되어서 어느 집의 기둥이나 서까래가 되어도 좋다
젊은 농부의 희망이 될 과수원의 어린 사과나무도 좋고
고로쇠나무가 되어서 뼈가 약한 사람들에게 물을 퍼주어도 좋다
시집갈 딸을 위해 심은 오동나무도 좋고
누군가의 유골을 묻은 층층나무도 좋다
어느 작은 선술집 앞 벚나무가 되어 꽃피는 계절에 피로에 찌든 여주인의 얼굴에 웃음을 주면 참 좋겠다

다음 생에는
말없이 비바람을 견디고
가만히 모두를 보듬어주는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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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이 정말 좋다. 기억해 둔다.

 

 

     연극

 

 이따금 사람들이 술에 너무 취하지 않고 맨정신으로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창작극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컨대 "부자와 가난뱅이 이야기"라는 것이 있다.

 우리 가운데 하나는 가난뱅이이고, 다른 하나는 부자이다.

 부자가 테이블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가난뱅이가 들어온다.

 - 장작을 다 팼습니다. 나리.

 - 잘했군. 운동은 역시 몸에 좋아. 그래서 자네는 혈색이 좋군. 뺨이 아주 빨개.

 - 손은 꽁꽁 얼었습니다. 나리.

 - 이리 와! 보여주게! 구역질 나도록 지저분하군! 자네 손은 갈라지고 짓물러 터졌어.

 - 동상에 걸려서 그렇습니다. 나리.

 - 자네 같은 가난뱅이들은 언제나 더러운 병에 걸려 있어. 불결해. 지겹네. 자, 품삯이나 받아가게.

 부자는 가난뱅이에게 담배 한 갑을 던져준다. 가난뱅이는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인다. 그러나 문가에 서 있던 그는 재떨이를 찾지 못한다. 감히 테이블 가까이로 가지 못한다. 결국 자신의 손바닥에 담뱃재를 턴다. 가난뱅이가 빨리 나가주기만을 기다리던 부자는 가난뱅이가 재떨이를 찾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한다. 그러나 가난뱅이는 배가 고프기 때문에 그 집을 바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가 말한다.

 - 좋은 냄새가 진동합니다. 나리.

 - 청결한 냄새지.

 - 그건 따끈한 수프 냄새입니다요. 저는 오늘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못 먹었습니다.

 - 끼니는 제때에 먹어야지. 난 요리사가 휴가중이라서 레스토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갈 참이네.

 가난뱅이가 코를 킁킁거린다.

 - 하지만 이건 이 집에서 나는 따끈한 수프 냄새 같습니다.

 부자가 역정을 낸다.

 - 우리집에서는 수프 냄새가 날 리가 없네. 아무도 수프를 끓이고 있지 않아. 아마도 이웃집에서 새어나온 냄새이거나, 아니면 자네가 너무 배가 고파서 착각을 일으킨 걸세! 자네 같은 가난뱅이들은 먹을 것만 생각하지 않나. 그러니 돈을 모을 수가 없는 거야. 자네들은 번 돈을 수프와 소시지 사는 데 다 써버리지. 돼지와 진배없어. 돼지라구. 이제 우리집 마룻바닥을 자네 담뱃재로 다 더럽힐 셈인가! 여기서 썩 나가. 다시 보고 싶지 않으니까.

 부자는 문을 열고, 가난뱅이를 발로 걷어찬다. 가난뱅이는 거리로 나가떨어진다.

 부자는 문을 닫고 수프 접시 앞에 앉아 접시를 두 손으로 감싸며 말한다.

 - 주님의 모든 은혜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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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이 계절을 조금 더 걷고 싶다는 애인의 성화에
몸을 굽혀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키려던 담배를
허겁지겁 손에서 놓치고
고개를 들어 연인의 얼굴을 바라보기도 전에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 위로 벚꽃이 떨어지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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