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2014/10/07 | 1 ARTICLE FOUND

  1. 2014.10.07 20141007 - 하루에 하나씩

바램


알짜배기 땅에 알짜배기 농사를 짓고 싶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누구라도 놀러올 수 있는 흙집을 짓고
감자, 고추, 옥수수, 오이, 참외, 수박, 호박, 가지, 토마토, 당근, 콩, 참깨, 들깨, 배추, 무, 양파, 마늘을
내 멋대로 심고 길러서 내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나눠 먹고 싶다

봄이면 쑥을 캐고
가을엔 칡을 캐서
속 아프고 몸이 찬 우리 엄마에게 보내야겠다
여름이면 오디 술을 담가서
친구들과 함께 먹어야겠다
가을에는 산딸기 술을
겨울에는 뱀술을 먹어야겠다
누룩을 띄워서 막걸리도 담가야겠다
막걸리엔 꿀을 넣어 먹어야겠다

엄마는 병이 낫고
친구들과 나는 낮술에 취해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볼 것이다

집 앞에는 냇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장마비가 내리면 물과 같이 넘쳐 땅에 펄떡이는 고기를 잡아야겠다
집 뒤에는 뽕나무, 자두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감나무,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배나무를 심어야겠다
나무 아래에 아버지를 모셔야겠다
철마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열매를 따 먹어야겠다

집엔 손님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손님들과 함께 밭에서 일하고 함께 밥을 해 먹어야겠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솥을 걸고 닭을 잡아야겠다
나만 아는 곳에 심어둔 인삼도 닭과 함께 솥에 넣어야겠다
손님들과 같이 논김을 매다가 지쳐서
논두렁 옆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늘어지게 자는 날도 있을 것이다

봄에는 취나물을 뜯으며 당신을 생각할 것이다
여름에는 손모를 내며 당신을 생각할 것이다
가을에는 도토리를 주우며 당신을 생각할 것이다
겨울에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당신을 생각할 것이다
친구들이 술에 취해 잠든 밤에도 당신을 생각할 것이다
어느날에는 너무 생각나서 울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살다가
몸의 털이 다 허옇게 세고 머릿속도 그리되는 때가 오면
이렇게도 즐겁게 살았노라고
세상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겠다
그리고는 얼큰히 취해서 아버지 숨겨놓은 바로 옆 나무에 기대서
조용히 눈을 감고 싶다

아무일도 없이 살다가 아무일도 없이 간다고
나에게만 나에게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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