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데, 친구가 땅을 사니 마음이 아프다.

지난 토요일에 양양에 다녀왔다. 친구가 땅을 계약했다. 군사 뭐시기 지역인 밭 -실제로는 논이었다. - 1500평에 대한 계약서를 썼다. 변산 공동체에 있다가 나와서 충북에서 포도 농사를 짓고 포도밭 주인에게 쫓겨나 제주도로 거처를 옮기고 농사를 짓지 못하고 일당일을 하다가 이대로는 영원히 농사 짓고 못 살게 될까봐 그게 두렵고 싫어서 전국 이곳 저곳에 땅을 보러 다니며 비싼 땅값에 절망하다가 결국 주말 아침 비행기를 타고 멀리 양양까지 와서 싸다고 생각한 땅을 계약한 친구의 마음을 절반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나라면 사지 않았을 땅이다.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가져 보자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눈빛에 그런 여유는 없었다. 이미 제주에서 지금의 나와 비슷한 삶을 산 친구에게 이쪽으로 옮겨서 몇 년만 이일 저일 기웃거리다가 함께 공동체든 농업이든 해보자는 얘기도 할 수 없었다. 친구와 함께 잠든 토요일 밤에 그 땅을 두 배 값으로 파는 꿈을 꿨다.

내 꿈이 그 친구에게 닥칠 최악의 상황이길, 친구가 잘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경험이 마음을 만든다.

볼음도 생활 2년에 현실로 남은 것은 아직 못 받은 작년 쌀값 뿐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는 더욱 희미해지고 내 사람이 아닌 사람의 말은 그냥 듣기만 한다. 나도 친구처럼 내년에는 무리해서라도 땅을 살까, 생각했다가 기왕 늦은 거 동계 올림픽 끝날 때까지만 기다리자고 마음 먹은게 지난 금요일이다.

양수리에 벼농사 모임이 있다. 300평 논을 일곱명이 짓는다. 실험을 해보자는 것이다. 어제 다녀왔다. 나는 실험보다는 대중적인 것을 좋아해서 100프로 내키지는 않는데, 기분 좋아진 지후의 얼굴을 보니 나도 좋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 또한 좋다. 금요일에는 아내 친구가 강릉에 다녀갔는데 지후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좋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 또한 좋다. 아내 친구들은 아내 친구들대로 좋고 내 친구들은 내 친구들대로 좋다.

나는 이렇게나 사람을 좋아하는데 가끔은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말도 그냥 듣기만 한다. 큰일이면서 큰일도 아닌 게 이런 것이 인간이고 나란 사람이다.

삽당령에 일당일을 다니고 있다. 집에서 좀 멀지만 오랜만에 하는 몸 쓰는 일이 좋고 공기랑 물, 나무와 산, 동료들까지 여러가지가 나랑 잘 맞는다. 잘 됐다.

다만 오늘은 국무총리 기념식수용으로 멀쩡히 잘 자라는 나무를 파냈다. 공직 사회도 나도 참 병신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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