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올해가 다 갔다.

오늘은 추석맞이 동네 풀베기를 했다. 하루 빡세게 일하고 나흘 설렁설렁 일한셈 친다. - 옘병, 어디에다 감사할 진 몰라도 감사합니다. - 일 마치고 술을 마셨다. 오후 한 시에 새벽 한 시 만큼 취했다. 그리고 동네엔 빗방울이 떨어진다. 말라 비틀어진 논에 도움이 될거다. 모든 것이 완벽한 이 순간에 나는 불안하다.

두 명의 친구랑 통화를 했다. 한 놈은 춘천에 한 놈은 강릉에 산다.

무릇, 사람이란 자기 마음이 편한 곳에 사는 게 제일이다. 두 친구 모두 그렇질 않다. 또 사람이란 자기 편한대로 사는 게 제일이다. 두 녀석 모두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그러자고 강릉으로 이사 가려는데, 그렇지 않은 친구들을 보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만 같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죽을때까지 계속된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도 변하지 않는 명제다. 이 두 가지가 상호작용하며 개인의 삶을 정한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 있는가?
엘시노어여, 나는 어디에 있는가?

질문은 끝나지 않고 대답은 반복된다. 이 반복을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세계의 질서는 깨지고, 나도 사라진다. 사라지지 않기 위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는) 사라진다. 사라진다

고구미가 여기까지 생각했을까? 두렵다.

존재하지 않는 영원까지 언제까지라도 마시고 싶은 오후다.

예초기로 풀을 잘라낸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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