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출발

뭐라도 적어볼까
누웠다
누워서도 손이 움직이고 의식이라 부를 수도 있는 것이 작동한다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
이건 새출발은 아니다
이미 출발했는데 또 출발한다는 건 서투른 위안이다
나는 바다 건너 나라의 대통령이 오늘 무슨말을 했는지 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세상의 모든 표면이 내 앞에 있다
이런 세상이라니
내 몸을 지탱할 밥을 먹으며 평생 가보지도 못할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배고픔을 안다
내 삶과 먼곳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일들을 너무도 많이 안다
이런 세상이라니
뻔히 눈에 보이는 동시대를 침묵으로 일관할 수 있나
어설픈 마음 씀이 침묵보다 비겁하다
자려고 누웠다가
연필과 종이도 없이 엄지손가락 두 개만으로
이렇게 아무렇게나 휘갈겨쓰며 낮에 본 버섯을 떠올리는 세상이라니
그 버섯은 진짜였을까
전망이 없는 정상
실체가 없는 실재
실재가 없는 실제
밑이 없는 바닥에 혼자 누워서
반성이 없는 내일을 생각하는 밤
이 손가락질이 자정을 넘기지 말아야지
내일은 새출발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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