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삼 년의 풍요

어제 낮에 동생 아이 돌잔치에 갔다. 돌아가신 큰 이모만 빠지고 이모들이 다 모였다. 언젠가는 이모들이랑 부페를 먹은 적 있을텐데도 처음처럼 느껴졌다. 이혼한 전 막내 이모부도 빠졌다. 아버지랑 이모부들은 술을 마셨다. 이모들도 거들었다. 소고기며 초밥이 가득 담긴 이모들 접시를 보면서 '역시 이모들이 뭘 드실 줄 아셔.' 같은 멘트를 날렸다. 그렇게 잔치가 끝났다.
저녁에는 처부모님과 대기업 브랜드 한식 부페에 갔다. 꽉찬 사람들과 가득찬 접시들로 웅성웅성 풍요풍요 했다.
터질듯한 과식은 아니었지만 전체적으로 과식했다. 가족의 증명은 과식이고 과식의 결과는 굵은 똥이다. 똥은 양변기 배관을 타고 바다로 간다. 물고기 밥이 되고 다시 무언가의 똥이 될까. 세계의 빈곤과 상관 없는 하루하루와 달갑지 않은 풍요를 견디기가 어렵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금 여기가 내 자리가 아니라는 기분에 휩싸인다. 나이 육십이 된다고 달라질까?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동료들이, 사람들이 두렵다.

'먹는 인간'에서 식욕이란 정직하단 문장을 읽었다.

돌아가지 못하는 이 생에서 나는 무엇에 정직한가?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