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오후의 생각


TV뉴스가 김정남의 죽음을 두 시간 째 떠들고 있다
조선땅에 사는 수 천의 김정남 중에 한 명이 살해당한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아, 뉴스에 나오는 김정남은 북한 사람 김정남이지
남한 사람들은 북쪽의 일에 관심이 많지
또 그는 김일성의 손주이고 김정일의 아들이지
남한에는 이병철의 손주가 구속된 건 아쉬워 하면서도
김정은이 권력을 잡은 것에는 못마땅해 하는 사람도 많지
핏줄이란 게 무섭지
화면속 고인의 모습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닮았다
남북은 하나고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니까 고인은 나랑도 닮았겠지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얼굴에 눈 코 입이 달린 것이 닮았고
콧구멍이 두 개인 것도 닮았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일요일 오후에
강원도 정선군 오일장 한 귀퉁이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누가 보는 줄도 모르고 오줌을 누는 중년 남자가 집에 잘 들어가는 일보다
먼 이국땅에서 김정남이 독살당한 일과 그 범인을 잡은 일이 중요한 일일까
둘 다 나랑 닮은 사람이고 우리는 한민족인데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아직 살았는데
어떤 경우에는 죽은자가 산자보다 더 중요한 것일까
북한사람 김정남은 죽어서도 관심을 받는 일이 행복할까
본인 토사물 위에 쓰러질 뻔 한 남자는 집에 잘 들어갔을까
나는 오늘 죽지도 않고 비틀거리지도 않고 집에 잘 들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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