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나보다 21살이 많고 고교를 졸업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지만 경북 영주에서 언니들이 공장에 다니던 서울 문래동으로 와서 언니들이랑 같이 일하다가 옆집에 고모랑 같이 세들어 살던 우리 아버지랑 결혼했다.

어려서 낳은 큰 아들인 나를 끔찍히 아꼈고 이웅평이 미그기 타고 내려 왔을때는 실제상황이라는 경보를 듣고 어린것들(나와 동생) 걱정에 펑펑 울었다고 한다. 전형적인 경북 남자에 관료 출신인 외할아버지의 영향 탓인지 내가 열 다섯 살 때까지는 엄마한테 많이 맞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에 엄마가 때리는 게 안 아프게 됐고 엄마도 그걸 알았다.

내가 고 2때 술장사를 시작했고 오산으로 옮겨서 장사한 건 99년이나 2000년 부터인가? 대학 1학년 때는 학비를 받았지만 나머지는 어찌어찌 벌어서 다녔다. 엄마는 그걸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그게 고맙다고 생각한다. 우리집은 정말 가난했고 나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엄마랑 나는 몇 번인가 불을 끄고 누워서 손을 잡고 울었다. 어쩌면 나만 울었다. 어느날은 내가 우니까, 엄마가 울지말고 씩씩하게 살라고 했다.

업종이 업종이다보니 손님들한테 맞은 날도 있고 나한테 얘기하지 못한 기분 나쁜 일들은 숫자로 셀 수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게 안에서 술병이 깨지고 취한 사내들이 아우성을 쳤겠지. 엄마는 그걸 어떻게 참았을까? 이혼한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참았을 것 같진 않다.

내가 산림보호직 시험 합격했다니까 가장 좋아했던 엄마인데 막상 일 시작하니까 정말 바빠서 전화할 짬도 안난다. 내가 타이밍 놓쳐서 전화 자주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니까. 그래도 좋단다.

그런 엄마가 집을 샀다.


엄마집

엄마가 집을 샀다. 볕 잘 들고 바람 잘 통하는 아파트 1층이다. 집이 좋다. 근데 눈물이 난다. 오전에 엄마집에 들렀다. 데운밥이랑 뻗뻗한 대파가 들어간 계란말이랑 볶지 않고 삶아서 무친 오뎅, 생강이 많이 들어가서 맛 없는 소고기 무국을 엄마랑 같이 먹었다. 맛 없었다. 근데 눈물이 난다. 엄마랑 헤어지고 천안으로 출장 왔다. 엄마집이랑 오랜만에 둘이서만 먹은 밥이 자꾸 생각난다. 그래서 자꾸 눈물이 난다. 엄마엄마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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