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가 끝나간다. 살짝 자랑이지만 40년 가까운 생을 주로 놀면서 살았기 때문에 공식적인 휴가, 휴가라고 할 수 있는 휴가는 생에 처음이었는데, 항문주위농양 절개술을 받고 생긴 구멍 세 개에서 흐르는 진물과 함께 휴가가 끝나간다. 땀이 찔찔 나는데 샤워를 못하니까 많이 불편하다. 앞으로 종기는 초반에 대처하기로 한다.

 종기 짜내고 바로 영화제 구경하는 계획이었다가 생각보다 일이 커져서 퇴원하고도 제천에서 두 밤을 더 잤다. 어제 하루 쉬고 오늘도 병원 때문에 제천에 다녀왔다. 영동고속도로 정비 공사 때문에 제천 왔다갔다 하면서 국도변의 풍경을 실컸봐서 좋았다. 오늘은 대관령 옛길로 차를 몰고 내려오는 여유도 부렸다. 자동차에서 아내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별 얘기가 아닌데도 그 상황 자체로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다. 이런 작은 행복이 나를 살게 한다.

 어제, 오늘은 '잘 되고 싶다' 는 마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잘' 은 거의 돈이고 '남들보다' 가 포함된 욕망이다. 인간 존재의 이유가 남들보다 돈 많이 버는 거라면 이번 세대의 인류는 실패다. 다음 생이 없듯이 다음 세대도 없으니 남은 것은 포기다. '잘'의 형태를 조금만 바꾸면 '즐겁고 싶다', '즐기고 싶다' 가 된다. 비교 대상이 없는 욕망은 없겠지만 경쟁심이 약한 사람들도 행복한 세상에 살고 싶다.

 모든 편법이 싹을 틔우는 부정한 세상에서 욕망들이 부딪친 자리가 어지럽다. 나는 자꾸 사랑안으로만 숨고 그게 부끄러운 일을 계절이 바뀔때마다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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