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뒤틀린 입으로 썩은 말을 내밷듯
뒤틀린 손가락으로 오타에 썩은 글을 써내려한다
취했다
보잘것 없는 세상이 힘에 겨웠다기엔
결국은 취할 내가 가당치도 않아서
그냥 취했다
마지막엔 잔까지 마실 지경이니
첫 잔은 반 만 마시고도 이렇게 대취하였다
모처럼 만나서
맹물 먹고 얘기하긴 부끄러워서
해 넘어가기도 전에
태양 앞에 부끄러운 민낯을 보이는 중이다
죽지 못해 산다면서 죽도록 술을 마셨다
오후 한 시에 새벽 한 시만큼 취했다
적막이 흐르는 아구탕 집에서
당신과 단 둘이 소주를 마셨다
갈 곳은 한 곳 밖에 없는 것을
알고도 취해버렸다
이토록 사랑하는 당신과 술을 마셔도
취하여 오늘이 사라지고 나면
평소엔 잊었던 원망만 떠오른다
당신에 대한
아내에 대한
세상에 대한,
당신을 닮은 달의 그림자여
어서 모습을 보여
나를 너의 길로 이끌어다오
무엇이라도 탐하고 싶지만
부끄러워 탐할 수 없는
이 환한 오후를 지워다오
마침 나보다 더 오래 살았을 전봇대가 보인다
피곤의 냄새가 나는 오줌을 누고
전봇대에게, 나를 기다린 너에게
나는 미안해졌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도 삶은 앞으로만 나아가고
세상이 끝나도 우리의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나는 겨울을 못 버티는 어린 싸리나무
죽기 전에 너를 안고 싶다
탐욕스럽게 적어댔지만
별 내용도 의미도 없는 것들 뿐이다
획실한 한 가지는
네가 있기 때문에 내가 외롭다는 것
그래서 더욱
죽기 전에 너를 안고 싶다
너는 이 세상에서 나를 찾아온 유일한 사람
그러니 더욱
죽기 전에 너를 안고 싶다
이 모든 것은 소득 없는 각성
그러니 더더욱
술이 깨기 전에
밤이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너를 안고 싶다
이 모든 사탕발림이
대낮에 대취한 까닭이다
그래도 너를
안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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