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에 일하다가 벌에 쏘였다. 왼쪽 아래 턱에 쏘였는데, 본래 벌을 안 탔던데다가 쏘인 자리가 붓지도 않길래 대수롭지 않게 계속 일했다. 그런데 한 30분 정도 지나면서부터 온 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안되겠다 싶어서 바로 퇴근했다. 왕산면 보건소에는 주사약이 없다고 해서 강릉의료원까지 내려왔다. 현장에서 의료원까지 아무리 빨리 밟아도 50분은 소요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계속 가렵고 가슴은 답답해왔다. 무사히 병원에 도착했고 주사 맞고 약 먹고 나았다. 그 덕분에 오늘 쉬게 됐다. s형은 벌에 쏘였다가 죽을 뻔한 사람을 알기 때문에 신속하게 이런저런 대처를 해줬고 친구 j도 총알처럼 운전을 해줬다. 사무실 직원들도 응급실에 다녀갔고 집에 도착하면 내가 먼저 전화 드려야지 했던 동료들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가 왔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이 타인에 대한 관심과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언젠가 손에서 미끄러진 비누가 엄지 발톱을 때렸다. 들을 사람도 없는데, 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난주에 아카시아 열매를 채집했다. 집에 와서 씻는데, 뜨거운 물을 몸에 끼얹자마자 아,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도 몰랐는데, 열매 채집하면서 몸 군데군데 아카시아 가시에 긁혔던 모양이다. 그제서야 긁힌 상처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벌에 쏘인 사건도 그렇고 직접 당하는 고통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이렇게 선명하다. 하지만 남의 고통을 공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자세히 밝히긴 어렵지만 지난주에 회사에서 의료보험 사건이 있었다. 우리끼리 뭉쳐서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각자 납부할 돈을 내는 것으로 끝나는 진행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나는 직접 고통을 받은 대상자가 아니기 때문에 기분만 나쁜 채 참았다. 세상이 사람들을 각자도생으로 몰고 간다. 페친 전성원 선생이 본인 타임라인에 각자도생의 해결책도 각자도생인 세상에 대해서 한탄하는 멘트를 날렸다. 내 머릿속에 이민이라던가 안정적인데 취직한다던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도 결국은 해결책을 각자도생에서 찾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영덕에서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시작됐다. 경주에는 방폐장이 들어섰고, 밀양에는 송전탑이 세워졌다. 강정도 그렇고 설악산, 가리왕산도 그렇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응급실의 여의사는 벌에 쏘이면 즉각적으로 대처할 방법도 없이 50분 간 차를 타고 병원에 와야하는 나의 작업 환경에 대해서 걱정하는 멘트를 하고 조심해서 일하라고 했지만 나랑 동료들은 그런건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이 간극을 메우기가 어렵다.

 모든것은 이어져 있다. 생각에만 그치지 말고 뭔가를 아주 작은 것이라도 타인에 대한 관심과 걱정을 드러낼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한다. 

 요즘 얼굴보기 불편한 동료들도 생기고 했었는데, 마음을  다잡고 다 같이 잘 지내도록 노력해야겠다. 시작은 항상 가까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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