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가게


사랑하는 당신,
비 오는 날에 빈 가게에서 만나요
다방 외상값은 기름 종이에 적어두고
비 오는 날은 빈 가게에서 만나라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텅 빈 가게에서 만납니다
우리는 빈 가게에서 사랑을 합니다
사랑은 공허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부둥켜안고 먼지투성이의 바닥을 뒹굽니다
서로의 뼈와 살을 탐합니다
주인도 없고 물건도 없는 그곳에선
텅 빈 진열대만이 우리를 훔쳐 볼 거예요
그 시선이 부끄럽다면 부끄럽지만 그렇게 부끄러울 것도 없어요
모든 열기를 뿜어내고서
우리는 서로의 몸에 붙은 먼지를 털어주면서 웃습니다
그리곤 입을 맞춥니다
사랑의 기쁨이 텅 빈 가게를 가득 채울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주인 없는 카운터에 빈손을 내밀고 가게를 나옵니다
우리는 뼈다귀 해장국도 먹지 않고 헤어집니다
어차피 지금 내리는 비가 우리의 끈적함을 씻어낼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먹어도 먹어도 생도 사랑도 공허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비 오는 날의 빈 가게는 그런것이기 때문이에요
내 사랑,
우리 비 오는 날에 빈 가게에서 만나요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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